지도를 그리는 방법: 최단경로 밖의 도시
박진선
2026.10.27(TUE)-11.9(MON)
12:00-20:00
OPENING RECEPTION
2026.10.30.(FRI) 16:00-20:00
기획, 글 | 서다빈 큐레이터
디자인 | 정미정 디자이너
후원 | 서울문화재단
* 관람료는 무료이며 별도의 예약 없이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 주차는 인근 유료주차장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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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그리는 방법: 최단경로 밖의 도시 전시 서문Ways of Mapping: The City Beyond the Shortest Route
같은 길을 걸어도 같은 장면을 보는 것은 아니다. 어제 지나친 신호등이 오늘은 눈에 들어오고, 따로 보이던 사물들이 어느 위치에서는 하나의 윤곽을 이룬다. 빛과 날씨, 걸음의 방향에 따라 익숙한 장소에서도 변화무쌍한 도시는 날마다 새로운 풍경을 제공한다. 박진선에게 걷기는 도시와 관계를 맺는 방법이다. 제주에서 서울로 옮긴 작가는 낯선 길을 익히며 주변을 카메라 렌즈에 담기 시작했다. 길이 익숙해진 뒤에도 기록은 계속되었고, 배수관의 꺾임과 울타리의 돌기, 망가진 표지판의 윤곽이 작업의 소재가 되었다.《지도를 그리는 방법: 최단경로 밖의 도시》는 그가 발견한 형태가 작품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따라가며, 신작에서 개별 형태가 결합해 새로운 구조를 이루는 과정에 주목한다.
박진선의 기록은 평소 무심코 지나친 도시를 관찰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페렉의 시도와 맞닿는다.1) 페렉이 한 장소에서 오가는 사람과 사물의 움직임을 글로 기록했다면, 박진선은 여러 사진에서 고른 사물의 형태를 변형하고 결합한다. 사진 위에 트레이싱지를 대고 필요한 윤곽을 옮긴 뒤, 다른 사진에서 얻은 드로잉과 겹친다. 어느 선을 지우고 남기는지에 따라 서로 다른 사물의 윤곽은 하나의 밑그림으로 치환된다. 배수관과 환풍기, 창살의 윤곽은 일부만 남거나 서로 겹치면서 원래 사물의 기능을 상실한다. 작가가 이 과정을 약도 그리기에 비유하는 것은, 지나온 장소를 모두 재현하기보다 자신이 주목한 특징만을 남기기 때문이다. 이 드로잉은 길을 안내하는 도면이 아니라, 작가가 도시에서 발견하고 기억한 형태들을 선택해 구성한 기록이다. 전시에 등장하는 도자와 회화의 형상들은 이 사적인 기록에서 출발한다.
이번 신작에서는 작품의 규모뿐 아니라 형태를 결합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사진에서 추출한 윤곽을 드로잉에서 포개는 데 더해, 작가는 이전에 제작한 형태를 변형해 새로운 작품의 일부로 활용한다. 때로는 만들고 싶은 구조를 먼저 떠올린 뒤, 일상에서 그에 가까운 모습을 찾기도 한다. 작가는 평면의 드로잉을 바탕으로, 흙을 길게 말아 쌓는 코일링 방식을 통해 몸체를 세우고 여러 부분을 결합한다. 평면의 형태를 입체로 옮길 때는 각 부분의 무게와 뻗는 방향을 고려해 중력의 힘을 버틸 수 있도록 비례와 배치를 조정한다.
작가의 관찰과 제작은 이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도시에서 발견한 형태가 작품으로 이어지고, 제작의 경험은 다시 다음 관찰의 방향을 바꾼다. 하나의 형태는 다른 부분과 결합하면서 전체 구조 안에서 위치와 역할을 새로 얻는다. 이 과정에서 개별 형태와 전체 구조가 함께 달라지므로, 결합은 이미 정해진 형태들을 이어 붙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작품을 살펴볼 때에는 각 부분이 무엇을 닮았는지와 함께, 결합 과정에서 서로의 형태를 어떻게 바꾸었는지도 눈여겨볼 수 있다. 이러한 결합이 건축적 규모로 확장되면서, 개별 형태를 넘어 작품이 주변 공간과 맺는 관계까지 살펴보게 한다.
관객의 움직임은 작품 각 부분의 관계를 발견하는 또 하나의 경로다. 옆으로 걸음을 옮기면 겹쳐 보이던 부분이 분리되고, 덩어리 사이의 빈 공간이 드러난다. 가까이에서는 흙의 질감을, 거리를 두면 전체 윤곽을 살펴볼 수 있다. 도자와 회화에 나타나는 유사한 형태를 비교하며 관찰했을 때, 입체의 음각이 평면의 색면으로 표현되는 방식에서 두 매체가 깊이와 겹침을 다루는 차이가 드러난다. 표면과 곡면을 보며 만졌을 때의 감각을 예상하는 경험은, 형태를 시각뿐 아니라 촉각의 문제로 다루는 작가의 관심과도 연결된다. 사물의 관찰에서 시작한 작업은 이제 관객의 위치와 기억에 따라 새로운 장면을 만든다.
오늘날 도시의 지도는 이동 시간과 거리, 교통수단을 비교해 목적지까지 가장 효율적으로 갈 수 있는 경로를 선택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같은 길을 지나더라도 무엇에 주목하고 어디에서 멈추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최단경로로 안내된 길에서도 시선의 방향을 바꾸면 익숙한 풍경에서 이전에 보지 못한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최단경로 밖’으로 걷는 행위는 특정한 길을 벗어나기보다, 이동의 효율만을 기준으로 주변을 바라보던 방식을 바꿀 수 있다. 작가가 걸으면서 눈에 들어온 사물의 윤곽을 골라 기록하듯, 관객도 작품 사이를 이동하며 멈출 곳과 바라볼 방향을 정한다. 여기서 지도 그리기는 각자가 발견한 것들을 서로 연결하는 일이다. 전시는 작가의 관찰에서 출발한 형태들을 관객이 자신의 시선으로 새롭게 관계 짓도록 제안한다.
글_서다빈(독립 큐레이터)
1. Georges Perec, An Attempt at Exhausting a Place in Paris, trans. Marc Lowenthal (Wakefield Press, 2010). 페렉은 1974년 10월 파리의 생쉴피스 광장에서 사흘 동안 눈앞을 지나가는 사람과 차량, 새와 일상의 변화를 기록했다.
지도를 그리는 방법: 최단경로 밖의 도시 전시 서문
Ways of Mapping: The City Beyond the Shortest Route
같은 길을 걸어도 같은 장면을 보는 것은 아니다. 어제 지나친 신호등이 오늘은 눈에 들어오고, 따로 보이던 사물들이 어느 위치에서는 하나의 윤곽을 이룬다. 빛과 날씨, 걸음의 방향에 따라 익숙한 장소에서도 변화무쌍한 도시는 날마다 새로운 풍경을 제공한다. 박진선에게 걷기는 도시와 관계를 맺는 방법이다. 제주에서 서울로 옮긴 작가는 낯선 길을 익히며 주변을 카메라 렌즈에 담기 시작했다. 길이 익숙해진 뒤에도 기록은 계속되었고, 배수관의 꺾임과 울타리의 돌기, 망가진 표지판의 윤곽이 작업의 소재가 되었다.《지도를 그리는 방법: 최단경로 밖의 도시》는 그가 발견한 형태가 작품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따라가며, 신작에서 개별 형태가 결합해 새로운 구조를 이루는 과정에 주목한다.
박진선의 기록은 평소 무심코 지나친 도시를 관찰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페렉의 시도와 맞닿는다.1) 페렉이 한 장소에서 오가는 사람과 사물의 움직임을 글로 기록했다면, 박진선은 여러 사진에서 고른 사물의 형태를 변형하고 결합한다. 사진 위에 트레이싱지를 대고 필요한 윤곽을 옮긴 뒤, 다른 사진에서 얻은 드로잉과 겹친다. 어느 선을 지우고 남기는지에 따라 서로 다른 사물의 윤곽은 하나의 밑그림으로 치환된다. 배수관과 환풍기, 창살의 윤곽은 일부만 남거나 서로 겹치면서 원래 사물의 기능을 상실한다. 작가가 이 과정을 약도 그리기에 비유하는 것은, 지나온 장소를 모두 재현하기보다 자신이 주목한 특징만을 남기기 때문이다. 이 드로잉은 길을 안내하는 도면이 아니라, 작가가 도시에서 발견하고 기억한 형태들을 선택해 구성한 기록이다. 전시에 등장하는 도자와 회화의 형상들은 이 사적인 기록에서 출발한다.
이번 신작에서는 작품의 규모뿐 아니라 형태를 결합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사진에서 추출한 윤곽을 드로잉에서 포개는 데 더해, 작가는 이전에 제작한 형태를 변형해 새로운 작품의 일부로 활용한다. 때로는 만들고 싶은 구조를 먼저 떠올린 뒤, 일상에서 그에 가까운 모습을 찾기도 한다. 작가는 평면의 드로잉을 바탕으로, 흙을 길게 말아 쌓는 코일링 방식을 통해 몸체를 세우고 여러 부분을 결합한다. 평면의 형태를 입체로 옮길 때는 각 부분의 무게와 뻗는 방향을 고려해 중력의 힘을 버틸 수 있도록 비례와 배치를 조정한다.
작가의 관찰과 제작은 이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도시에서 발견한 형태가 작품으로 이어지고, 제작의 경험은 다시 다음 관찰의 방향을 바꾼다. 하나의 형태는 다른 부분과 결합하면서 전체 구조 안에서 위치와 역할을 새로 얻는다. 이 과정에서 개별 형태와 전체 구조가 함께 달라지므로, 결합은 이미 정해진 형태들을 이어 붙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작품을 살펴볼 때에는 각 부분이 무엇을 닮았는지와 함께, 결합 과정에서 서로의 형태를 어떻게 바꾸었는지도 눈여겨볼 수 있다. 이러한 결합이 건축적 규모로 확장되면서, 개별 형태를 넘어 작품이 주변 공간과 맺는 관계까지 살펴보게 한다.
관객의 움직임은 작품 각 부분의 관계를 발견하는 또 하나의 경로다. 옆으로 걸음을 옮기면 겹쳐 보이던 부분이 분리되고, 덩어리 사이의 빈 공간이 드러난다. 가까이에서는 흙의 질감을, 거리를 두면 전체 윤곽을 살펴볼 수 있다. 도자와 회화에 나타나는 유사한 형태를 비교하며 관찰했을 때, 입체의 음각이 평면의 색면으로 표현되는 방식에서 두 매체가 깊이와 겹침을 다루는 차이가 드러난다. 표면과 곡면을 보며 만졌을 때의 감각을 예상하는 경험은, 형태를 시각뿐 아니라 촉각의 문제로 다루는 작가의 관심과도 연결된다. 사물의 관찰에서 시작한 작업은 이제 관객의 위치와 기억에 따라 새로운 장면을 만든다.
오늘날 도시의 지도는 이동 시간과 거리, 교통수단을 비교해 목적지까지 가장 효율적으로 갈 수 있는 경로를 선택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같은 길을 지나더라도 무엇에 주목하고 어디에서 멈추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최단경로로 안내된 길에서도 시선의 방향을 바꾸면 익숙한 풍경에서 이전에 보지 못한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최단경로 밖’으로 걷는 행위는 특정한 길을 벗어나기보다, 이동의 효율만을 기준으로 주변을 바라보던 방식을 바꿀 수 있다. 작가가 걸으면서 눈에 들어온 사물의 윤곽을 골라 기록하듯, 관객도 작품 사이를 이동하며 멈출 곳과 바라볼 방향을 정한다. 여기서 지도 그리기는 각자가 발견한 것들을 서로 연결하는 일이다. 전시는 작가의 관찰에서 출발한 형태들을 관객이 자신의 시선으로 새롭게 관계 짓도록 제안한다.
글_서다빈(독립 큐레이터)
1. Georges Perec, An Attempt at Exhausting a Place in Paris, trans. Marc Lowenthal (Wakefield Press, 2010). 페렉은 1974년 10월 파리의 생쉴피스 광장에서 사흘 동안 눈앞을 지나가는 사람과 차량, 새와 일상의 변화를 기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