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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둘레는 멀고도 가까워서

<전시종료>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큐레이터학과 제 20회 졸업기획전시회

2020. 7. 1 – 7. 7
박슬기  무니페리  이지양&유화수  이해민선

기획 | 동덕여대 예술대학 큐레이터학과
장소 | 온수공간 1-3F
지도교수 | 임산
관람시간 | am 10 - pm 7, 휴관없음
➕ 네이버 예매 링크 (본 전시는 사전 예매 후 관람 가능합니다)
https://booking.naver.com/booking/12/bizes/372159/items/3479997
➕ 전시 공식 홈페이지 https://www.sofar-yet-sonear.com/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특질은, 사실상 과학적이라기보다 정치적으로 결정된다. 미쉘 푸코(Michel Foucault)는 『광기의 역사』에서 광기의 개념이 형성되고 유통되는 과정을 쫓는다. 고대에 광기는 근원적인 앎을 지시하는 신령한 증상이었다. 르네상스까지도 광기와의 대화는 진리를 추구하는 수단이었을 뿐, 질병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성중심주의가 발달하기 시작한 17세기에 이르러 광기는 치료와 감금의 대상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라 좋지 않은 시력 또한 장애에서 불편으로 그 이름을 달리하였고, 유전학은 인종 간의 차이가 절대적이지 않으며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처럼 정상성의 둘레는 지배적 권력에 의해 임의적으로 설정된 가변적인 상황에 의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끊임없이 용인 받을 수 있는 범주를 설정하고, 둘레를 그어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한다.

안팎을 분명히 하는 이분법적 분별은 모호한 세계에 체계를 덧씌우며 인류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무지로부터 구원하였다. 적어도 플라톤의 세기에는 그러했다. 이제 명료한 둘레는 사유 양식을 절편화하는 파시즘의 단초가 된다. 나치는 자국민으로부터 아리아인이 아닌 것을 분리하여 홀로코스트로 내몰아냈고, 공산주의를 배격하고 자본주의를 지향하여 ‘하나의 백성’으로 단결해야 한다는 일민주의(一民主義)는 독재로 향했다. 예측 불가능한 자연을 통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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