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숨어
류준열 개인전
일시 | 2026. 07. 02 - 07. 26
장소 | 온수공간
관람 시간 | 12 - 8 PM
전시서문 | 이인규 @hibyedcapt
그래픽디자인 | 보인다스튜디오 @boinda.co
인터뷰 | 안근철 @kunchul.ahn
주최/주관
류준열 junyeolryu.myportfolio.com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 본 전시는 2026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 선정작입니다.
* 관람료는 무료이며 별도의 예약 없이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 주차는 인근 유료주차장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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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둔(遁), 마을 촌(村)이라는 둔촌 지명의 한자 뜻에서 따온 〈마을에숨어〉라는 이름은 작업실 공간이자 그곳에서 함께 활동했던 모임의 이름이었다. 전시 《마을에 숨어》는 〈아파트 숲〉을 통해서 아파트가 시간으로 키워낸 나무들을 조망하고, 〈우리는 입주민을 위하여 일한다〉를 통해 아파트의 속내를 드러내며, 〈부재의 아카이브〉를 통해 그곳에 존재하던 다양한 삶과 시선을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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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숨어 우리는
글 이인규
둔촌주공아파트가 사라진 바로 그 자리에 예전보다 몇 배는 더 높고 거대한 아파트 장막이 솟아올랐다. 그 낯설고 생경한 모습이 어느덧 당연하고 익숙한 게 되어버리면, 그곳에 고요히 자리 잡고 있던 옛 동네의 풍경과 기억도 흐릿해질 것 같아서 애써 피해 다니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곳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지 모르겠다. 둔촌주공아파트의 기록을 다시 열어보는 일도 쉽지 않았다. 잠시 반갑다가도 이제는 이 모든 게 사라졌다는 상실감만 계속 새롭게 마주하게 되는 것 같아 이내 덮어두었다. 그렇게 지난 10년간 있었던 많은 일들을 모두 없었던 것처럼 애써 모르는 척하며 살고 있다.
그러다 이 글을 부탁받고 준열 씨가 공유해 준 그의 작업을 오랜만에 찬찬히 살펴보았다. 혼자서 열어봤을 때는 마냥 공허하고 쓸쓸하게만 느껴졌었기에 걱정이 앞섰다. 기록 안에 남겨진 것들이 거의 다 사라진 지금, 애써 남긴 그 기록을 사람들에게 펼쳐 보이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런데 그 기록을 남기던 시간을 함께한 이의 부탁으로 다시 펼쳐보니 평소와는 조금 다른 기분이 들었다. 작품마다 함께 애썼던 그 시절 우리들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눈앞에서 빠르게 사라져가는 것들을 붙잡는 것에만 매몰되어 지내느라 기록하는 동안의 순간들이 내게 가득 쌓이고 있는 걸 놓치고 있었다는 걸 새롭게 깨달았다.
아주 오래전, 동북고등학교 교지 편집부에서 ‘지역의 인물’을 인터뷰하고 싶다며 나를 찾아왔었다. 그때 사진을 담당하고 있던 어린 학생이 준열 씨였고, 원하던 사진학과에 입학하고 다시 나를 찾아왔다. 첫 학기 흑백사진 수업에서 한 학기 동안 둔촌 아파트의 나무를 찍어보려 한다고 했다. 둔촌 주공아파트의 나무만큼은 사진을 잘 찍는 누군가가 따로 기록해 주길 바라왔던 나로서는 정말 반가운 이야기였다. 너무 좋은 생각이라고, 아마 학기만으로 끝내기엔 아쉬울 너무 좋은 주제일 거라며 열심히 바람을 넣었다.
그 뒤로 준열 씨는 흑백 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를 둘 다 챙겨 들고 드넓은 둔촌 주공아파트 단지 안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러다 잠시 에어컨 바람에 열을 식히러 혹은 언 몸을 녹이러 둔촌종합상가 3층 구석에 있던 <마을에숨어> 작업실에 종종 왔고, 그날 준열 씨가 찍은 사진들을 같이 훑어보곤 했다. 예전 사진첩을 뒤적여 둔촌 주공아파트에 단풍이 언제쯤 가장 예쁘게 드는지 같이 찾아보기도 하고, 동네에 눈이 내리면 서둘러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그가 찍은 사진을 보며 매번 진심으로 기뻐하며 감탄하는 일이 내 역할이자 그의 작업을 응원하는 방식이었다.
2016년 12월에는 2년 동안 쌓인 작업을 엮어 사진집 <아파트 숲>을 펴냈다. 사진집은 만들어본 적 없던 어설픈 제작자인 나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 구석도 있지만, 그래도 그의 작업을 처음 대외적으로 알린 계기가 되었을 테고, 무엇보다 둔촌주공아파트의 나무 사진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그의 <아파트숲> 시리즈 작업은 책 출판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비가 쏟아지는 어느 여름에 찍은, 짙고 검푸른색 나무들은 마치 정글처럼 무성했던 그곳의 야생적인 매력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입주민을 위하여 일한다>라는 제목의 관리사무소 시리즈는 오래전에 작업을 해놓고도 여러 사정으로 펴내지 못하다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선보인다. 국내 최대 단지였던 둔촌주공아파트의 지표면 아래에는 중앙난방 시스템과 방공호를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지하 세계가 있었다. 아무나 쉽게 들어가 보지 못하는 깊은 어둠 속에서 조명을 켜면 좁은 길과 파이프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이어져 있었고, 모든 끝은 관리사무소 지하로 연결되었다. 그곳에서 둔촌 주공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만 30년 넘게 일하신 분의 이야기를 청해 듣기도 하고, 재건축의 시작과 함께 멈춰 버릴 그분들의 일터에서 동료들과의 단체 사진을 남겨드리기도 했다. 그들은 주민들이 1%도 남아 있지 않던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는 입주민을 위하여 일한다’라는 자신의 사명을 다했고, 그 노고를 상징하는 듯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던 마지막 흰 연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부재의 아카이브>에는 둔촌 주공아파트의 마지막 시간이 담겨있다. 주민들이 모두 떠나고, 차갑게 식어가던 그곳에서 여전히 빛이 남아 있는 무언가를 건져내느라 발로 뛰며 고생한 안근철 씨가 있었고, 그가 건져낸 무수한 물건 더미 속에서 하나하나의 존재를 따로 떼어내 기록으로 남겨준 준열 씨가 있었다. 그렇게 살려낸 물건들의 사진과 교차하며 보이는 텅 빈 아파트의 풍경은 그야말로 황폐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딘지 모르게 성스러운 느낌이 전해지는 듯하다. 마치 죽음을 앞둔 존재 곁에서 사망신고를 기다리는 듯, 펜스 안 어둠 속에서 하염없이 머무는 검푸른 모습을 그저 지켜봐 주러 종종 아파트 주변 높은 건물 옥상을 찾아가곤 했었다.
그의 작업을 오랜만에 들여다보니 소멸하는 과정에서도 새로운 성장이 교차하고 있었다는 것이 새롭게 보였다. 단지 안을 지키던 나무와 아파트, 그리고 관리사무소의 40년 시간에 비하면 반의반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하나의 대상을 10년 동안 지켜본 우리의 시간도 결코 짧지 않았다. 학생 시절부터 점차 자신의 작업을 해나가는 작가로 자라나는 준열 씨의 성장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그 시간 동안 나도 분명히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애잔하고 순수한 사랑으로 ‘안녕,둔촌주공아파트’를 시작했던 시절과 사라짐의 공허함을 묵묵히 견디는 지금의 나는 같은 듯 다른 사람이다. 물론 무엇이 더 낫고 못 한 것은 없는 것 같다. 그저 그 시절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고, 그것은 그저 다를 뿐. 그래서인지 둔촌에서 남긴 준열 씨의 작업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다른 빛으로 소중하다.
숨을 둔(遁), 마을 촌(村)이라는 둔촌 지명의 한자 뜻에서 따온 <마을에숨어>라는 이름은 작업실 공간이자 그곳에서 함께 활동했던 모임의 이름이다. 그저 각자 다른 관심과 동기로 자기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하는 이들이 오가며 서로 알게 되는 그런, 느슨하고 열린 관계였기에 모임이라 불러도 되나 싶을 정도이지만, 그래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이들이 어딘가에서 이 길을 함께 걷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 덕분에 그 괴롭고 외로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연한 사실을 이번 기회에서야 새삼 또 깨닫게 된다. 어쩌면 이번 전시를 <마을에숨어>라는 제목으로 열고 싶어 한 준열 씨도 같은 생각이었을까.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류준열의 사진에서 이제는 모두 사라진 존재의 부재에 허탈해하기보다는 그 사라짐의 시간을 끝까지 직시하던 이들의 시선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이 전해지길 바란다. 그리고 비슷한 시간을 견디며 괴로워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부디 그들이 이 도시에서 외롭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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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류준열
내가 둔촌주공아파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2년 고등학교를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동북고등학교로 배정받으면서부터였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학교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아파트를 가로질러 가는 것이었는데, 아파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의 풍경에 가까웠다. 곧 쓰러질 것 같은 5층짜리 건물들은 아파트라 부르기엔 너무 낮아 보였고, 그보다 훨씬 높은 나무들이 아파트를 에워싸고 있어서 단지 내 보행로는 항상 숲속처럼 어두웠다.
단지를 뒤덮은 나무들 다음으로 둔촌주공아파트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거대한 굴뚝의 존재였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안 난다고,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올 때마다 나는 그 아래에 존재할 시설에 대해서 상상하곤 했다. 둔촌주공아파트가 관리처분인가를 앞둔 2017년, 나는 마침내 인규님의 도움으로 관리사무소 지하에 대한 출입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마주한 지하 세계는 기대하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난한 재건축 논의는 지하에서부터 아파트를 갉아먹었고, 한때 국내 최고의 시설을 자랑했을 지하 세계는 ‘우리는 입주민을 위하여 일한다’라는 구호 아래 간신히 낡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둔촌주공아파트의 이주가 끝나고 철거를 기다리던 마지막 시간 동안, 나는 둔촌주공아파트에서 보낸 시간에 대해 내 나름대로 마무리를 짓고자 했다. 이곳은 내게 의미 있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지긋지긋한 재건축 현장이기도 했고, 그동안 아파트의 안과 바깥을 부지런히 돌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자인 나의 경험은 결코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아파트의 마지막 풍경과 그곳에서 근철님과 함께 수집한 물건들로 구성된 마지막 작업의 제목을 〈부재의 아카이브〉라고 지은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부재하는 대상에 대한 아카이브여서이기도 하지만, 사진 속 대상들에 대한 나의 경험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둔촌주공아파트를 그렇게 그리워하지는 않는다. 다만 여전히 도시 곳곳에 걸려있는 재건축 현수막을 볼 때마다 함께 무언가를 남겨보고자 노력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어디까지나 타인의 공간이었던 둔촌주공아파트에서 내가 작업을 이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내게도 마을에숨어라는 소속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이곳에서의 작업들을 모아 발표한다면 그 제목은 마을에숨어로 하겠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다. 이번 기회를 빌려 우리 마을에숨어 동료들과 그동안 도와주신 많은 분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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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열(b.1996)은 주로 변두리의 장소성에 관심을 가지고 리서치와 필드트립을 기반으로 사진 작업을 한다. 재건축으로 사라진 둔촌주공아파트의 마지막 풍경과 그곳에서 수집한 물품들을 함께 구성한 연작 ‘부재의 아카이브’(2018-2020)를 발표했고, 현재는 남양주의 하루살이를 관찰하며 한강을 둘러싼 비인간 존재와 도시 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연작 ‘호롤롤로 사이트’(2023-2026)를 진행중이다. 개인전 《호롤롤로 사이트》(별관, 2025)를 개최했으며, 단체전 《Ephemeral Reality》(아트 포 랩, 2024), 《2019 미래작가상展》(캐논 갤러리, 2020) 등에 참여했다. 2026년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예술전문사에 재학 중이다. 립을 기반으로 사진 작업을 한다. 재건축으로 사라진 둔촌주공아파트의 마지막 풍경과 그곳에서 수집한 물품들을 함께 구성한 연작 ‘부재의 아카이브’(2018-2020)를 발표했고, 현재는 남양주의 하루살이를 관찰하며 한강을 둘러싼 비인간 존재와 도시 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연작 ‘호롤롤로 사이트’(2023-2026)를 진행중이다. 개인전 《호롤롤로 사이트》(별관, 2025)를 개최했으며, 단체전 《Ephemeral Reality》(아트 포 랩, 2024), 《2019 미래작가상展》(캐논 갤러리, 2020) 등에 참여했다. 2026년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예술전문사에 재학 중이다.
* 본 전시는 2026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 선정작입니다.
* 관람료는 무료이며 별도의 예약 없이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 주차는 인근 유료주차장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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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둔(遁), 마을 촌(村)이라는 둔촌 지명의 한자 뜻에서 따온 〈마을에숨어〉라는 이름은 작업실 공간이자 그곳에서 함께 활동했던 모임의 이름이었다. 전시 《마을에 숨어》는 〈아파트 숲〉을 통해서 아파트가 시간으로 키워낸 나무들을 조망하고, 〈우리는 입주민을 위하여 일한다〉를 통해 아파트의 속내를 드러내며, 〈부재의 아카이브〉를 통해 그곳에 존재하던 다양한 삶과 시선을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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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숨어 우리는
글 이인규
둔촌주공아파트가 사라진 바로 그 자리에 예전보다 몇 배는 더 높고 거대한 아파트 장막이 솟아올랐다. 그 낯설고 생경한 모습이 어느덧 당연하고 익숙한 게 되어버리면, 그곳에 고요히 자리 잡고 있던 옛 동네의 풍경과 기억도 흐릿해질 것 같아서 애써 피해 다니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곳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지 모르겠다. 둔촌주공아파트의 기록을 다시 열어보는 일도 쉽지 않았다. 잠시 반갑다가도 이제는 이 모든 게 사라졌다는 상실감만 계속 새롭게 마주하게 되는 것 같아 이내 덮어두었다. 그렇게 지난 10년간 있었던 많은 일들을 모두 없었던 것처럼 애써 모르는 척하며 살고 있다.
그러다 이 글을 부탁받고 준열 씨가 공유해 준 그의 작업을 오랜만에 찬찬히 살펴보았다. 혼자서 열어봤을 때는 마냥 공허하고 쓸쓸하게만 느껴졌었기에 걱정이 앞섰다. 기록 안에 남겨진 것들이 거의 다 사라진 지금, 애써 남긴 그 기록을 사람들에게 펼쳐 보이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런데 그 기록을 남기던 시간을 함께한 이의 부탁으로 다시 펼쳐보니 평소와는 조금 다른 기분이 들었다. 작품마다 함께 애썼던 그 시절 우리들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눈앞에서 빠르게 사라져가는 것들을 붙잡는 것에만 매몰되어 지내느라 기록하는 동안의 순간들이 내게 가득 쌓이고 있는 걸 놓치고 있었다는 걸 새롭게 깨달았다.
아주 오래전, 동북고등학교 교지 편집부에서 ‘지역의 인물’을 인터뷰하고 싶다며 나를 찾아왔었다. 그때 사진을 담당하고 있던 어린 학생이 준열 씨였고, 원하던 사진학과에 입학하고 다시 나를 찾아왔다. 첫 학기 흑백사진 수업에서 한 학기 동안 둔촌 아파트의 나무를 찍어보려 한다고 했다. 둔촌 주공아파트의 나무만큼은 사진을 잘 찍는 누군가가 따로 기록해 주길 바라왔던 나로서는 정말 반가운 이야기였다. 너무 좋은 생각이라고, 아마 학기만으로 끝내기엔 아쉬울 너무 좋은 주제일 거라며 열심히 바람을 넣었다.
그 뒤로 준열 씨는 흑백 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를 둘 다 챙겨 들고 드넓은 둔촌 주공아파트 단지 안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러다 잠시 에어컨 바람에 열을 식히러 혹은 언 몸을 녹이러 둔촌종합상가 3층 구석에 있던 <마을에숨어> 작업실에 종종 왔고, 그날 준열 씨가 찍은 사진들을 같이 훑어보곤 했다. 예전 사진첩을 뒤적여 둔촌 주공아파트에 단풍이 언제쯤 가장 예쁘게 드는지 같이 찾아보기도 하고, 동네에 눈이 내리면 서둘러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그가 찍은 사진을 보며 매번 진심으로 기뻐하며 감탄하는 일이 내 역할이자 그의 작업을 응원하는 방식이었다.
2016년 12월에는 2년 동안 쌓인 작업을 엮어 사진집 <아파트 숲>을 펴냈다. 사진집은 만들어본 적 없던 어설픈 제작자인 나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 구석도 있지만, 그래도 그의 작업을 처음 대외적으로 알린 계기가 되었을 테고, 무엇보다 둔촌주공아파트의 나무 사진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그의 <아파트숲> 시리즈 작업은 책 출판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비가 쏟아지는 어느 여름에 찍은, 짙고 검푸른색 나무들은 마치 정글처럼 무성했던 그곳의 야생적인 매력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입주민을 위하여 일한다>라는 제목의 관리사무소 시리즈는 오래전에 작업을 해놓고도 여러 사정으로 펴내지 못하다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선보인다. 국내 최대 단지였던 둔촌주공아파트의 지표면 아래에는 중앙난방 시스템과 방공호를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지하 세계가 있었다. 아무나 쉽게 들어가 보지 못하는 깊은 어둠 속에서 조명을 켜면 좁은 길과 파이프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이어져 있었고, 모든 끝은 관리사무소 지하로 연결되었다. 그곳에서 둔촌 주공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만 30년 넘게 일하신 분의 이야기를 청해 듣기도 하고, 재건축의 시작과 함께 멈춰 버릴 그분들의 일터에서 동료들과의 단체 사진을 남겨드리기도 했다. 그들은 주민들이 1%도 남아 있지 않던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는 입주민을 위하여 일한다’라는 자신의 사명을 다했고, 그 노고를 상징하는 듯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던 마지막 흰 연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부재의 아카이브>에는 둔촌 주공아파트의 마지막 시간이 담겨있다. 주민들이 모두 떠나고, 차갑게 식어가던 그곳에서 여전히 빛이 남아 있는 무언가를 건져내느라 발로 뛰며 고생한 안근철 씨가 있었고, 그가 건져낸 무수한 물건 더미 속에서 하나하나의 존재를 따로 떼어내 기록으로 남겨준 준열 씨가 있었다. 그렇게 살려낸 물건들의 사진과 교차하며 보이는 텅 빈 아파트의 풍경은 그야말로 황폐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딘지 모르게 성스러운 느낌이 전해지는 듯하다. 마치 죽음을 앞둔 존재 곁에서 사망신고를 기다리는 듯, 펜스 안 어둠 속에서 하염없이 머무는 검푸른 모습을 그저 지켜봐 주러 종종 아파트 주변 높은 건물 옥상을 찾아가곤 했었다.
그의 작업을 오랜만에 들여다보니 소멸하는 과정에서도 새로운 성장이 교차하고 있었다는 것이 새롭게 보였다. 단지 안을 지키던 나무와 아파트, 그리고 관리사무소의 40년 시간에 비하면 반의반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하나의 대상을 10년 동안 지켜본 우리의 시간도 결코 짧지 않았다. 학생 시절부터 점차 자신의 작업을 해나가는 작가로 자라나는 준열 씨의 성장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그 시간 동안 나도 분명히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애잔하고 순수한 사랑으로 ‘안녕,둔촌주공아파트’를 시작했던 시절과 사라짐의 공허함을 묵묵히 견디는 지금의 나는 같은 듯 다른 사람이다. 물론 무엇이 더 낫고 못 한 것은 없는 것 같다. 그저 그 시절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고, 그것은 그저 다를 뿐. 그래서인지 둔촌에서 남긴 준열 씨의 작업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다른 빛으로 소중하다.
숨을 둔(遁), 마을 촌(村)이라는 둔촌 지명의 한자 뜻에서 따온 <마을에숨어>라는 이름은 작업실 공간이자 그곳에서 함께 활동했던 모임의 이름이다. 그저 각자 다른 관심과 동기로 자기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하는 이들이 오가며 서로 알게 되는 그런, 느슨하고 열린 관계였기에 모임이라 불러도 되나 싶을 정도이지만, 그래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이들이 어딘가에서 이 길을 함께 걷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 덕분에 그 괴롭고 외로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연한 사실을 이번 기회에서야 새삼 또 깨닫게 된다. 어쩌면 이번 전시를 <마을에숨어>라는 제목으로 열고 싶어 한 준열 씨도 같은 생각이었을까.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류준열의 사진에서 이제는 모두 사라진 존재의 부재에 허탈해하기보다는 그 사라짐의 시간을 끝까지 직시하던 이들의 시선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이 전해지길 바란다. 그리고 비슷한 시간을 견디며 괴로워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부디 그들이 이 도시에서 외롭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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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류준열
내가 둔촌주공아파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2년 고등학교를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동북고등학교로 배정받으면서부터였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학교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아파트를 가로질러 가는 것이었는데, 아파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의 풍경에 가까웠다. 곧 쓰러질 것 같은 5층짜리 건물들은 아파트라 부르기엔 너무 낮아 보였고, 그보다 훨씬 높은 나무들이 아파트를 에워싸고 있어서 단지 내 보행로는 항상 숲속처럼 어두웠다.
단지를 뒤덮은 나무들 다음으로 둔촌주공아파트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거대한 굴뚝의 존재였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안 난다고,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올 때마다 나는 그 아래에 존재할 시설에 대해서 상상하곤 했다. 둔촌주공아파트가 관리처분인가를 앞둔 2017년, 나는 마침내 인규님의 도움으로 관리사무소 지하에 대한 출입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마주한 지하 세계는 기대하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난한 재건축 논의는 지하에서부터 아파트를 갉아먹었고, 한때 국내 최고의 시설을 자랑했을 지하 세계는 ‘우리는 입주민을 위하여 일한다’라는 구호 아래 간신히 낡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둔촌주공아파트의 이주가 끝나고 철거를 기다리던 마지막 시간 동안, 나는 둔촌주공아파트에서 보낸 시간에 대해 내 나름대로 마무리를 짓고자 했다. 이곳은 내게 의미 있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지긋지긋한 재건축 현장이기도 했고, 그동안 아파트의 안과 바깥을 부지런히 돌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자인 나의 경험은 결코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아파트의 마지막 풍경과 그곳에서 근철님과 함께 수집한 물건들로 구성된 마지막 작업의 제목을 〈부재의 아카이브〉라고 지은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부재하는 대상에 대한 아카이브여서이기도 하지만, 사진 속 대상들에 대한 나의 경험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둔촌주공아파트를 그렇게 그리워하지는 않는다. 다만 여전히 도시 곳곳에 걸려있는 재건축 현수막을 볼 때마다 함께 무언가를 남겨보고자 노력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어디까지나 타인의 공간이었던 둔촌주공아파트에서 내가 작업을 이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내게도 마을에숨어라는 소속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이곳에서의 작업들을 모아 발표한다면 그 제목은 마을에숨어로 하겠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다. 이번 기회를 빌려 우리 마을에숨어 동료들과 그동안 도와주신 많은 분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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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열(b.1996)은 주로 변두리의 장소성에 관심을 가지고 리서치와 필드트립을 기반으로 사진 작업을 한다. 재건축으로 사라진 둔촌주공아파트의 마지막 풍경과 그곳에서 수집한 물품들을 함께 구성한 연작 ‘부재의 아카이브’(2018-2020)를 발표했고, 현재는 남양주의 하루살이를 관찰하며 한강을 둘러싼 비인간 존재와 도시 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연작 ‘호롤롤로 사이트’(2023-2026)를 진행중이다. 개인전 《호롤롤로 사이트》(별관, 2025)를 개최했으며, 단체전 《Ephemeral Reality》(아트 포 랩, 2024), 《2019 미래작가상展》(캐논 갤러리, 2020) 등에 참여했다. 2026년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예술전문사에 재학 중이다. 립을 기반으로 사진 작업을 한다. 재건축으로 사라진 둔촌주공아파트의 마지막 풍경과 그곳에서 수집한 물품들을 함께 구성한 연작 ‘부재의 아카이브’(2018-2020)를 발표했고, 현재는 남양주의 하루살이를 관찰하며 한강을 둘러싼 비인간 존재와 도시 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연작 ‘호롤롤로 사이트’(2023-2026)를 진행중이다. 개인전 《호롤롤로 사이트》(별관, 2025)를 개최했으며, 단체전 《Ephemeral Reality》(아트 포 랩, 2024), 《2019 미래작가상展》(캐논 갤러리, 2020) 등에 참여했다. 2026년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예술전문사에 재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