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phy_Me


신소윤 개인전


일시 | 2026. 3. 25 - 2026. 4. 6

장소 | 온수공간 

관람 시간 | 12 - 7 PM 

협력 기획|최윤서

포스터 디자인 | 전인회



* 관람료는 무료이며 별도의 예약 없이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 주차는 인근 유료주차장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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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멀어짐으로써 완성되는
빛의 자리로” 1)

1.
    신소윤의 장면은 대개 자기 자신의 인물과 그를 둘러싼 배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서 인물은 공간에서 자기 스스로 서 있는 작가의 몸이다. 대개 초상(肖像)에서 그 인물이 갖고 있는 고유한 서사와 분위기를 감상자가 파악할 수 있는 단서는 표정과 인상이 담긴 얼굴이지만, 신소윤의 자기 초상 사진에서는 그 단서가 가려져 있다.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얼굴로부터 거리를 두고 멀리서 관조하는 시야로 자기의 몸을 제시한 것이다. 그에 따라 세월의 흔적을 품은 얼굴 위로 떠오르는 수많은 감정을 살피며 그 영혼을 넘겨짚기 이전에, 하나의 대상으로서의 몸에 집중하게 된다. 회색의 콘크리트로 점철된 서울이라는 도시, 그리고 그를 벗어난 자연- 주변을 휘감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 우주적 질서에 따라 수천 년을 움직여온 파도를 품은 바다,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산. 자리한 공간이 어떠한 배경이든 아랑곳하지 않고 그 사이 홀로 우뚝 서 있는 한 여성 작가의 몸은 《Trophy_Me》의 시작과 끝이자 모든 것이다. 
    작가에게 ‘몸’이라는 형상은 곧 자기의 주체성을 내세우는 매체이자 배경으로 대표되는 타자-세계와의 접속과 관계성을 담지 한 통로와도 같다.2) 일반적으로 몸의 정의란 우리의 정신과 신체적인 활동이 발생하는 장소이자 살아있다는 실존적인 가치를 증명하는 껍질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집단 안에서, 그리고 집단들 사이에서 정체성 확인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사회적 기호에 맞춰진 것이기도 하다.3) 그러나 신소윤에게 몸은 가장 먼저 자기 이미지를 스스로 생산하고 편집하는 주체적인 행위를 담아낸 “자기-구성(self-fashioning)”의 의지를 드러내는 자리이다.4) 몸으로 표상되는 신소윤의 자기-구성적인 행위는 이번 전시의 제목이자 2024년 작업 세계의 출발점부터 꾸준히 이어온 연작을 대표하는 제목에서의 ‘트로피(Trophy)’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작가는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현재까지 역사적으로 승리의 상징으로서 누군가에게 치켜세워진 하나의 대상, 트로피라는 이름을 조심스럽게 빌려왔다. 
    그간 작가는 개인적인 삶에서 누군가의 아내이자 어머니, 딸로서 배경을 자처하거나 그림자로 머물러 왔다고 했다.5) 자유롭고 자주적인 독립성을 갖는 존재로 불리기보다는 타인과의 관계나 시선에 묶여있는, 그 반대의 성질로 판단되고는 했던 것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번은 고착된 일상의 정형으로부터 탈피를 꿈꾸지만 대부분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로 그치는 반면, 인생의 중반부에 다다른 시점에서 카메라를 손에 쥐게 된 작가에게 그 동기는 다소 내밀한 것이었다. 중년의 이른 나이에 병마와 싸우다 세상을 떠난 두 여성, 어머니와 언니의 상실로부터 깊은 실존의 자기 물음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상실을 직접 겪은 시절에는 애써 외면해왔으나 마침내 본인 역시 그들이 생을 다한 그 나이에 이르게 되었을 때 신소윤 작가는 그들과 같은 과정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흔들림을 마주하며 그간 뒤로 물러서 있던 주체로서의 자기를 비로소 호출하였다. 그렇기에 어떠한 배경으로부터든 자기의 몸을 카메라 앞에 꼿꼿이 세우고 담아낸 모든 작업은 과시의 장식물이 아닌 “자기 인식의 방법”이자, 지금 내가 여기에 존재하고 있음을 스스로 일깨우며 하나의 주체로서 이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리는, 끊임없이 흔들릴지라도 스스로 중심을 잡고 서기 위해 애쓰는 자기에게 건네는 작지만 분명한 증표인 트로피인 것이다.6)

2.
    《Trophy_Me》는 가려져 온 자기 존재의 역사를 드러내는 작가의 작업 태도를 면면히 보여주면서 자기실현을 향해가는 리미널리티(liminality)를 체현하게 한다.7) 리미널리티는 이곳도, 저곳도 아닌 상태 또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얽히며 그다음의 방향을 은밀히 암시하는 과도기적인 단계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신소윤의 고정된 정체성의 표상이나 완결된 자아의 초상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 대신 자기를 드러내기 위한 작가의 필연적인 머뭇거림과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자아를 어디 세울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으며 경계 위에서 그저 스스로를 향해 건너가는 주체의 순간을 머금고 그 사유의 장으로 우리를 이끈다.8)
    자신의 발로 서있는 몸은 실상 그 자리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한 세계 위에 서서 부단히 모든 긴장과 떨림 사이에 균형을 맞추고 있는 상태이다.9) 신소윤의 작업 세계는 그 시작부터 숙명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자립의 과정을 담고 있으며, 이전의 세상을 깨뜨리고 나오는 데에서 오는 고독과 상처는 숨김으로써 하나의 의미에 그치지 않는 자존에 대한 해석의 장을 열어준다. 가장 먼저 작가는 스스로 자기를 세우기 위해 카메라를 등지고 빼곡하고 드넓은 도시 풍경을 바라보고 섰다. 마주 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원피스 자락은 안온한 일상과의 마찰의 순간에서 자각한 존재적인 흔들림을 느껴지게 하고, 그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신지 않은 맨 발로 땅을 딛고 인왕산의 봉우리 위에 꼿꼿하게 서 있는 작가의 뒷모습은 시간 속 한 존재의 유한함을 지각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비로소 스스로를 마주하는 찰나를 드러낸다. 
    뒷모습으로 자기를 보여준 작가는 이제 카메라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방식으로 그가 누구인지를 보여준다. 무릇 그가 그간 살아온 삶이 타자와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정의하는 것이었듯이, 그 사이에서 희미하게 뒤로 물러났던 자신의 위치를, ‘내가 여기 있음’을 드러내고자 섬광의 빛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상을 반사해 내는 거울을 통해서, 그 다음에는 발광하는 플래시를 활용해 빛으로 얼굴을 가린 자기를 드러내며 실재했으나 누군가를 위한 역할을 다하는 동안 흐려져 온 자아의 속성을 화면 위로 투출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드러난 정면조차 순간 밝게 빛나는 플래시의 불빛에 가려진 탓에 여전히 화면 속 작가에 대한 분명한 판단은 유보되며, 넘겨짚는 인지적 행위 대신 그저 바라보게 될 뿐이다. 빛에 가려진 얼굴, 그러나 스스로 그 빛을 터뜨림으로써 선명하게 화면을 차지하며 이곳에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기꺼이 증명하는 존재를. 그러한 존재가 이다음에 어디로 향할지, 어느 곳에 자리매김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그곳이 과연 ‘빛’의 자리일 것임을, 한때를 매듭짓는 장을 걸어 나온 우리는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글 │최윤서


1) 이혜미, 「사라진 입술과 두 개의 이야기」, 『빛의 자격을 얻어』 (문학과 지성사, 2021), 31.
2) 이는 프랑스의 현상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의 언어로 바꿔 말하면 ‘세계에의 존재(l’􄠜tre-au-monde)’인 몸이다.
3) 이브 미쇼, 「몸의 이미지: 오늘날의 영혼에 대한 질문」, 『몸과 미술』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문화원, 1999), 20.
4) “자기-구성(self-fashoning)”은 스티븐 그린블랫(Stephen Greenblatt)이 인간의 주체성이 부상한 르네상스 시대의 주체를 논하면서 쓴 개념어로, 추후 문화연구와 정체성 정치 및 젠더 연구에서 확장 사용된 표현이다.
5) “나는 오랫동안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으로 살아왔다. 그것은 성격이자 습관이 되었고 때로는 안도가 되기도 했다. 가족 안에서는 아내이자 엄마, 딸로서 늘 누군가를 돌보는 자리에 머무는 것이 익숙했고,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나는 스스로를 뒤로 물리며 다른 이들을 앞세웠다.”, 『신소윤 작가 노트』.  
6) “Art is a way of recognizing oneself, which is why it will always be modern.” Louise Bourgeois in an interview with D. Kuspit; excerpts from her Destruction of the Father, Reconstruction of the Father: Writings and Interviews 1923-1997 (Cambridge, MA: MIT Press, 1998).
7) 리미널리티(liminality)는 인류학의 개념으로, 인간의 생애에서 이전의 상태를 벗어났지만 그 다음의 새로운 상태로 완전히 전환되지는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Victor Turner, From Ritual to Theatre: The Human Seriousness of Play (New York: PAJ Publications, 1982), 20-60.
8) 이러한 신소윤의 사진을 두고, 사색적이고 생각하는 순간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역설한 자기실현을 위한 저항적인 힘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Roland Barthes, Camera Lucida:Reflections on Photography, trans. Richard Howard (New York: Hill and Wang, 1981), 38.
9) Simone de Beauvoir, The Second Sex, trans. Constance Borde and Sheila Malovany-Chevallier (New York:Vintage Books, 2011),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