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마닐라


유수진 


2024. 9. 12 - 2024. 9. 29



장소 | 온수공간 1F
관람시간 | 12 - 7PM , 추석당일 휴관 

주최/주관 | 유수진
디자인 | 김윤하(오르앤솔티즈) @orrandsaltyz 
설치도움 | 김아라, 오승언
사진 | 양이언
후원 |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관람료는 무료입니다.
*주차는 인근 유료주차장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유수진은 ‘장소’를 직접 경험하고 이야기를 수집하면서 변화하는 장소를 ‘삶의 장소’로 바라보며 그곳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실재 이야기에 주목해 왔다. 이 과정에서 ‘평범한’ 사람과 그들의 ‘일상적’ 경험의 특수성을 작업으로 끌어오고 이를 미적 표현으로 나타낸다. 

 온수공간에서 열리는 개인전 《리틀 마닐라》(Little Manila)는 매주 일요일, 혜화동성당을 중심으로 재한필리핀인이 모이는 현상을 통해 혜화동을 ‘장소성’을 파악한다. 필리핀의 가톨릭 신자는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며, 초기 자양동 성당에서 혜화동 성당으로 필리핀 미사가 이전되면서 시장이 형성되었다. 현재 2,000여 명의 필리핀인이 참여하며, 미사는 약 25년 전 시작된 이래로 사회에 깊이 자리 잡았다.

혜화동성당에서 동성고등학교까지 100m 거리에는 필리핀 음식점, 식료품 가게, 잡화점 그리고 고국으로 송금하는 은행과 커뮤니티 센터 등이 운영된다. 덜 익은 바나나, 뾰족한 뿔이 달린 호박, 희귀한 통조림, 이국적인 물건들이 쌓인 길을 따라가면, 고향을 찾아온 필리핀인을 마주할 수 있었다. 대부분 일자리를 찾아 한국으로 온 필리핀인들은 한국의 생활을 만족하는 듯했지만, 늘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내비치며, 혜화동의 필리핀 커뮤니티를 통해 고향의 감성을 느끼고자 했다. 이들은 한국에서의 삶이 임시적이라고 느끼며, 고향과의 연결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이처럼, 이번 전시에서는 도시 풍경뿐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와 얽힌 혜화동 ‘리틀 마닐라’의 ‘장소성’을 탐구한다. ‘리틀 마닐라’는 다른 외국인 집단 거주지와는 달리, 매주 일요일에만 형성되는 가변적이고 유동적인 장소이다. 이른 아침부터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재한 필리핀들이 순식간에 간이 천막 상점을 세우고 여러 편의시설이 운영되지만, 미사가 끝난 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작품은 이러한 변동성과 임시성을 통해 ‘리틀 마닐라’의 독특한 장소성을 표현하고자 한다. 

 《리틀 마닐라》(Little Manila)는 수집된 사물과 장소의 특징을 재구성하여 전시 공간에 배치하고 관람객에게 ‘리틀 마닐라’가 보여주는 임시성과 유동적으로 변하지만 그럼에도 그 자리에서 반복되고 있는 장소의 특수성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전시장 입구에 배치된 <물결에 숨겨진>(2024)는 혜화동 오거리에 산발적으로 흩어진 혜화동 성당, 커뮤니티 센터, 마켓 등을 지점으로 이어 붙여, 섬의 형상으로 보이게 한다. 물결에 숨겨져 흐릿한 섬처럼, 수십 년 동안 혜화동에 존재했지만,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고 뚜렷이 보이지 않았던 ‘리틀 마닐라’의 모습을 ‘섬’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파도에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섬처럼>(2024)는 전시장 내에 1,000개의 통조림이 자유롭게 배치되고 관객의 참여를 통해 지속적으로 변형된다. 전시 중반부터 통조림은 관객에 의해 전시장 밖으로 옮겨지며, 공간의 변화와 사라짐을 시각화한다. 이 작품은 혜화의 빈 공간이 물건으로 채워지고 다시 비워지는 과정을 통해 사라짐과 나타남의 개념을 구현하며, 장소가 보여주는 변화와 유동성을 드러낸다.

<희미한 조각들이 서서히 드러나듯>(2024)는 다섯 개의 판넬로 구성되어 있으며, 천막 상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각 판넬에는 천막 아래에 포착된 도시 풍경이 배치되어 있으며. 바퀴가 달려 이동할 수 있는 형태로 제작되었다. 관객은 각 판넬을 이동시키면서, 스스로 변화하는 장면을 만들어내고, 간이 천막 상점의 가변적인 이미지를 체험할 수 있다.

<미사의 그림자가 어두운 방에 비추며>(2024)는 작고 어두운 방에 배치된다. 방 안에는 혜화동 성당에서 발견된 스테인드글라스가 라이트 박스 위에 놓여있다. 중앙에는 기도의자가 위치하고 그 앞의 지향형 스피커를 통해 필리핀어로 진행되는 미사 소리가 들린다. 정면에는 인터뷰 내용 중 선택된 그들의 이야기가 새겨진 액자가 배치되어 있으며, 이것은 반응형 조명에 따라 보였다가 사라지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흩어진 조각들 속에서>(2024)는 ‘리틀 마닐라’와 관련된 모든 기록을 담고 있는 사진과 메모 등이 걸려 있다. 각기 다른 기록과 자료들이 산발적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관람객이 단순한 작품을 넘어, 모든 기록과 과정 자체를 ‘리틀 마닐라’의 역사적 맥락과 과정의 예술적 가치로 직접 받아들일 수 있도록 유도한다.

 《리틀 마닐라》(Little Manila)는 평범한 사람들과 장소를 기록하고 재구성하여 예술로 표현하는 작업이다. 이 전시는 미술가와 관객, 작품과의 관계를 탐색하며, 작업 과정 자체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장소의 특징을 직접 현장에서 경험하고, 관계맺은 작가는 ‘리틀 마닐라’의 유동성, 가변성, 임시성을 드러내기 위해 관객과 작품과의 관계를 생성하는 방법을 선택하면서, 장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시한다. 
 이러한 방식이 관객에게 장소의 특성을 깊이 이해하게 하고 작품이 단순한 시각적 표현을 넘어서,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