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즈 TOOLS




2022. 10. 27 - 2022. 11. 16


홍해은 개인전




장소 | 온수공간 2 - 3 F
관람시간 | 12 - 7 PM, 휴관 없음

디자인ㅣ도한결
글ㅣ추성아
후원 |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 별도의 예약없이 방문 가능합니다.
* 관람료는 무료 입니다.

* 주차는 인근 유료주차장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 본 전시는 <서울문화재단 2022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홍해은 개인전: 툴즈 (TOOLS)

‘회화적’이라는 우연히 분류된 유닛들




회화는 20세기 이후 ‘회화의 죽음’이 지속적으로 선고되고, 좀비 회화가 지난 몇 년을 휩쓸었으며, 지금은 이로부터 탈각된 그 이후의 태도에서 개인의 미사사와 엮이는 유사 실험들이 지속되고 있다. 그 와중에 페인터라면 그리기의 기술과 도구가 새롭게 등장했을 때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을 활용해보려는 시도들이 등장했다. 예컨대, 호크니가 아이패드 드로잉 작업을 선보이는 등 회화 매체의 도구를 사용하되, 동일한 회화적 표현과 기법들을 얼마나 유사하게 다룰 수 있는지에 대한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물질이 아닌 기기를 매개한 비물질 공간 위에 회화적 물성을 구현하려는 제스처는 가상성에 함몰되지 않고, 어떤 생존 본능처럼 현실의 리얼리티를 지키고자 하는 것과 같다. 더이상 새로운 회화의 방법론들이 나오지 않는 작금의 상황에서 이 순간 동시대 페인터들은 제각각 그리기에 대한 고민과 회화의 지지체에 대한 고민, 물성의 표현에 대한 고민을 여전히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그림을 왜 그리는지’에 대한 출구를 찾기 위한 각자의 모색들 와중에 홍해은의 전시 <툴즈(TOOLS)>는 회화에서 세분화된 기법과 신체 움직임, 색, 농도, 두께 등 화면 안에서 펼쳐질 수 있는 다양한 확률들을 분류 및 목록화 하고, 스스로 거리두기를 하면서 ‘회화적’이라는 날 것의 요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므로 형식이 복제 및 이동하는 것을 질문한다. 
  
홍해은은 전시 제목 ‘툴즈’에서 드러나듯이 회화에서 활용할 수 있는 도구의 기능들에 주목한다. 이 때 ‘도구’라 함은 아이패드 회화의 에스키스에서부터 시작되는 해당 인터페이스의 툴에 기반한다. 작가는 스크린 이미지를 경험하는 다양한 조건들을 무시할 수 없는 지금, 신체로 그 행위가 다시 이동하는 과정에 무게를 둠으로써, 아이패드를 일차적으로 사용하여 만든 결과물을 캔버스로 옮기는 작업을 해왔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생성한 그리기의 다양한 기법들 예컨대, 마른 바탕에 젖은 붓질, 젖은 바탕에 젖은 붓질, 긁어내기, 겹치기, 두텁게 바르기, 압출 표현, 점묘법, 그라데이션, 뿌리기, 스프레이 뿌리기, 콜라주 등을 제비뽑기 혹은 주사위를 던져 걸러진 몇 가지의 요소들을 캔버스와 물감을 통해 실제 화면에 배치하고 레이아웃 한다. 자신의 의지와 감각이 아닌 요소들을 분류해서 철저히 우연에 맡기고, 매우 형식적으로 자신의 신체를 기계화 하는 태도는 어떤 회화적 당위성보다 랜덤하게 설정한 상황의 장치들의 개입에 주목하게 된다. 이처럼, 작가는 거리두기를 하지만 캔버스 위에 색과 형태를 재배치하고 구상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사적인 감각들이 다시 투입되어 그 사이에서 어긋나는 오차들을 스스로 발견한다. 
이때, 작업 과정을 세분화하여 전개도처럼 펼쳐 놓고, 종이 접기 하듯이 제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작가가 경험하는 조건들은 곧 재사용할 오픈소스를 만들기 위한 것과 같다. 작가의 신체를 기계화 하는 건조한 태도는 근래에 주목받고 있는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을 통해 그림을 그리는 인공지능이나 ‘다중모드(Multimodel)’ 기반으로 인간처럼 그림 그리기를 학습하는 오픈 AI의 ‘달리(DALL-E)’를 연상케 한다. 해당 인공지능은 기본적으로 텍스트와 이미지 등 다양한 양식의 정보를 동시에 이해하고, 다중 데이터를 고려해 결과를 즉각적으로 내놓는 형식을 취하며 텍스트 지시어를 인식하여 그에 적합한 이미지를 생성한다. 나아가, 프레임 안에 피사체의 위치를 바꾸거나 배경과 심도, 그리고 그림자까지 표현하며, 원본을 응용하는 데이터로 구축된 회화적 툴을 모두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공지능이 도구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이와 같은 태도를 갖고 오므로, 의식적으로 표현 기법과 행위의 제스처들을 지칭하는 지시어들을 열거하고 이들을 우연의 원리에 맡겨 선택되도록 한다. 여기서 후자의 경우와 인공지능이 데이터를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수집하여 결과를 내는 이전 과정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으나, 한편으로 홍해은이 설정한 방식이 더욱 즉흥적이면서 3인칭적인 존재의 창작자 역할에 초점을 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빅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식으로 색채와 형식들을 수집한 작가는 기법과 색을 선택하는데 있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단계를 투입하면서 페인터의 역할을 주어진 조건과 연동하여 하나의 ‘그림 도구’로 축소하기 위함이다. 이는 곧 형식 자체에 대한 회화적 탐구보다 기기 이미지가 창작자의 신체의 움직임으로 이동하면서 번안되는 과정에 있다. 즉, 물질화 되는 과정에서 계산된 방식의 틀 안에 수행하는 작가의 몸은 화면 위에 시간의 흔적들로 남게 되는 것이다. 

온수공간에서 선보일 약 열 점의 회화 <Blending with tools>(2022) 연작은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가장 효과적으로 화면을 구성했던 일차적인 작업에서 파생된 요소들이 우연성에 의해 나온 확률들을 겹겹이 올린 회화다. 또한, 작가는 캔버스 위에 레이어링 된 다양한 기법과 기성 오브제들을 콜라주한 가장 납작했던 이미지가 물질화 되는 지점을 의식적으로 연출한다. 이렇듯, 가장 효과적으로 그릴 수 있는 장치에서 가장 번거로울 수 있는 과정을 거치는 작가는, ‘레시피’라는 개념을 통해 그리기에 동반되는 몸짓들을 도구로 지칭하기 시작한다. 가장 기초적인 회화 기술을 각각의 화면이자 이를 구성하는 재료로 상정하여 한 겹 한 겹 쌓아 올리는 과정은 결국에 각각의 절차 안에서 걸러진 형식과 작가의 신체가 안과 밖을 오가며 끝없이 어긋나고 복제된다. 그리하여 홍해은은 이에 대한 최종 결과물로서 소개하는 전시 <툴즈>에서 캔버스의 재구성된 요소들을 개별 유닛들로 바라보고, 회화적이라고 불려 왔던 기본 형식들을 가장 날 것의 조악한 방식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로써, 2차원의 평면이 담고 있는 자기 속성의 물질 기반을 강조하는 반면에, 상대적으로 기술과 도구적 측면에서의 자기 복제 이미지가 절대적으로 영향력을 확보해 나가는 이중성을 투영하게 된다. 

글. 추성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