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적인 환상

2022. 6. 24 - 2022. 7. 10


김민지  개인전



장소 | 온수공간1 F

관람시간 | 12 - 7 PM, 휴관 없음

글ㅣ김지영
기획 | 김민지
디자인ㅣ덕화맨숀
촬영ㅣSTUDIO18
음악 | NOK
설치 | 안민환
도움 | 김샨탈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관람료는 무료이며, 별도의 예약없이 방문 가능합니다.
* 마스크를 착용하시고 입장해주시기 바랍니다.
* 주차는 인근 민영/공영주차장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우연적인 환상: 보이지 않는 시간의 조형(造形) 

 

우연한 시기에 일어나는 서로 무관한 듯 보이는 사건들이 만나 어느 순간 뜻밖의 시너지를 내기도 한다. 가깝게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그렇고 더 거창하게는 은하계의 탄생도, 현생인류의 출현도 어찌 보면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수많은 우연의 결과다.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김민지 작가의 전시 제목 《우연적인 환상》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완벽한 우연’이 작용한 결과로서의 단일 세계가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는 개인의 경험 속에서 언뜻언뜻 감지한 시공간이 불일치하는 듯한 순간을 실마리 삼아 어쩌면 현재 역시 환상의 산물일 수 있다고 가정하며 전시를 관통해 시간의 개념과 감각에 대해 탐구한다. 비선형적 시간에 대한 그의 SF적 상상력은 다양한 형식의 작품 속에서 지구를 넘어 우주까지 너르게 펼쳐졌다가 이내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감각으로 수렴된다.    


김민지 작가는 설치와 영상 작업을 기반으로 문학, 무용, 사운드아트, 연극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긴밀하게 협업하면서 본인이 원하는 가장 적확한 표현 방식을 찾아내 작품을 발전시킨다. 이번 전시는 지난 해 ‘지구에 갑자기 빙하기가 닥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동명의 다원예술 프로젝트 ‘우연적인 환상’의 확장판이자 프로젝트 전후로 작가가 수행했던 시간에 대한 연구를 종합하고 가다듬어 한 자리에 모은 개인전이자 기획전의 성격을 가진다. 


전시 속 사운드, 텍스트, 조각(설치), 사진 이미지, 영상 작품들은 때로는 부분과 전체로, 때로는 은유와 상징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관객이 다양한 스펙트럼의 시간성을 공감각적으로 경험하도록 이끈다. 전시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두 작품은 전시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출판물 <우연적인 환상>(2022)과 영상작업 <새로운 빙하기에 대하여>(2021)이다. 전자는 김민지 작가가 SF 시(詩)를 의뢰한 여덟 명의 시인(김샨탈, 김연덕, 성다영, 정소영, 조찬연, 차도하, 차유오, 차재신)의 작품과 사운드아티스트 nok이 참여한 <Shimmer>(2021), 작가가 수집한 시간에 대한 참조 이미지와 텍스트를 두루 담고 있다. <우연적인 환상>(2022)이 시라는 섬세한 매체를 빌어 주제에 대한 상상의 폭을 확장시키고 전시 공간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는 텍스트의 파편과 파생된 이미지의 원형을 유추할 근거를 제공한다면, 영상 <새로운 빙하기에 대하여>(2021)는 김민지 작가가 텍스트와 이미지, 영상편집 등 전 과정의 직접 창작자가 되어 새로운 빙하기에 대한 상상을 밀도 있게 담아내고 있다. 


온난화로 지구의 빙하가 다 녹아버린다면, 상승한 해수면이 지구의 자전 속도에 영향을 미친다면, 하루, 한 달, 일 년의 시간 개념에 균열이 생긴다면... 사실 이런 상상들이 더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는 징후들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지만 지구가 자전하는 속도를 느끼지 못하듯 우리는 변화를 쉽게 인지하지 못한다. 작가는 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변화의 감각들을 <기울어진 땅 위의 조각들>(2021)과 <연못>(2022)과 같은 조각 설치 작품을 통해 드러낸다. 채색 조각, 거울, 흙, 타포린 천(빙하가 녹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한다는) 등을 이용한 작품들은 재료의 물성과 상징성을 빌어 세계의 변화를 가시화하고 변화에 실존감을 부여한다. 마지막 방의 사운드 설치작업 <늘어뜨려진 하루>(2022)는 관객이 인내심을 가지고 자신의 감각에 집중했을 때 비로소 작은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관람 시 감상자가 소리에 대한 감각을 예민하게 깨워 둘 것을 제안한다.


전시라는 매체를 종종 책에 비유하곤 한다. 그 안에 담기는 내용과 형식은 각양각색일 수밖에 없기에 어떤 전시는 잡지, 어떤 전시는 회고록, 또 어떤 전시는 소설이나 보고서의 성격을 띈다. 그렇다면 김민지 작가의 전시는 어떤 책에 비유할 수 있을까? 얼핏 보면 시집을 닮은 것도 같지만 오히려 여행 안내서에 더 가까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구체적인 여행지가 어디인지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가 속하거나 속하지 않은 시간을 여행하기 위해 작가가 전시 공간에 펼쳐 놓은 여러 단서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자신만의 상상 속 여행 지도를 그려가다 보면 전시장을 나올 때 즈음 어느새 주변의 시간과 공간에 한층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신을 만날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가 지구에 어떤 우연을 불러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글 김지영(독립 큐레이터)


*이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2년도 청년예술가생애첫지원 사업을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