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의 내부

2022. 4. 21 - 2022. 5. 6

김소영 개인전



장소 | 온수공간 2,3 F

관람시간 | 12 - 7 PM, 휴관 없음
글 | 김소영
설치 | 엄민희
협력 | 이규연, 이규하
디자인 도움 | 안은지 


* 별도의 예약없이 방문 가능합니다.
* 마스크를 착용하시고 입장해주세요.







 

애써 구축해 온 세계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어떻게든 꾸역꾸역 고쳐 쓰거나 다 밀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것이다. 구약의 하나님은 고치려 해도 고쳐지지 않는 세상을 홍수로 쓸어버렸다. 하지만 홍수로 쓸려나간 땅에도 잔존하는 것들이 있다. 몸이 썩어도 뼈가 남는 것처럼 한번 만들어진 것에는 쉬이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을 정수(精髓)라고 부르든 오기라고 부르든 그것은 세계의 멸망에도 살아남아 폐허의 풍경을 이룬다.


나의 작업은 이러한 폐허 위에서 시작한다. 누가 멸망시킨 것도 아닌데 뒤돌아보면 파편뿐인 역사에서 나는 매번 써먹을 만 한 것을 찾는 데 실패하고 만다. 지난 십수 년 간 나는 신기루를 쫓아왔던 것 같다. 그 사실이 새삼 놀라운 것은 아니다. 놀라움은 그 신기루가 보여주는 환상조차 불명했다는 깨달음에서 비롯한다. 나는 내가 신기루를 쫓고 있다라는 막연한 감각만을 쫓아왔던 것 같다. 그것은 말하자면 신기루에 대한 신기루이다. 신기루를 쫓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이미 신기루 안으로 들어와 있었고 신기루의 내부에서 신기루를 쫓아왔다. 이미 도달해 있는 곳에 또다시 도달할 수는 없으므로 이 허망한 달리기는 반복해서 원을 그린다. 나는 이제 이 공허한 원운동의 시간으로 구동되는 경험적, 환상적 공간을 상상한다. 실패로 구축되고 망각에의 의지로 부서진 파편 위에 서서 관념에 몸을 입히고 움직임의 궤적을 남긴다. 그것은 이 안개와 같은 공간을 좀 더 머물만한 곳, 초대할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간다면 과거에 발생한 예기치 못했던 일들도 여유롭게 통제할 수 있다. 곧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감각에 무게를 더하는 것으로 소멸의 주도권은 넘어온다. 그러한 믿음으로 내가 만들어 온 폐허를 다시 바라본다. 그리고 춤추며 되돌아간다. 그것이 비록 서툰 동작일지라도 그 속도로 인해 바람이 발생한다. 바람은 죽은 것들을 움직이게 한다. 한바탕 유희가 끝나고 다시 현재의 자리로 돌아올 때 나는 정리를 시작한다. 모든 사고(事故)와 우연들이 통제되고 연결될 수 있도록 질서를 만들고 새로운 사건을 삽입한다. 타임 루프에 갇힌 사람은 사건을 회피하거나 재배치하며 모든 가능성을 확인한다. 나 또한 무용해 보이는 이 회전을 통해 확인하고자 한다. 자꾸만 흩어지는 땅이 어떤 모습으로 단단해질 수 있는지. 홍수와 재건이 반복해서 만들어 온 풍경은 어떤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지. 회한도 불안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안전한 감각의 풍경을 신기루의 내부에 건설하고자 한다.


김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