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선의 틈 𝘾𝙧𝙚𝙫𝙞𝙘𝙚𝙨 𝙗𝙚𝙩𝙬𝙚𝙚𝙣 𝙩𝙝𝙚 𝙂𝙖𝙯𝙚𝙨

2022. 2. 18 - 2022. 3. 14


구수현   김방주   이주연



장소 | 온수공간 2 - 3 F

관람시간 | 12 - 7 PM, 휴관 없음
기획ㅣ이민아
작가ㅣ구수현, 김방주,이주연

협력ㅣ남은혜
디자인ㅣ김유나
글ㅣ김신재,미셸 밀라 피셔(MICHELLE MILLAR FISHER), 배세진
촬영ㅣ조준용
주최, 주관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 별도의 예약없이 방문 가능합니다.
* 마스크를 착용하시고 출입명부를 작성해주세요.












《멈춘 시선의 틈》은 예술가와 장소, 관객과 전시 사이 상호 유동적인 관계를 돌이켜보고 전시에서 생략되던 주체를 살펴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전시기획자들은 ‘전시’를 매개로 관람자를 예술적 순간 안에 조금 더 머물게 하지만 개막 이후에는 전시장 밖에 한걸음 물러서 있기 때문에 소통에 아쉬움이 남아있다. 이에 본 전시는 전시 제작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 모두를 무대로 초대하며, 시각예술공간에서 주인공 역할을 해왔던 ‘전시’ 이외에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일련의 준비 과정, 공간의 물리적 환경 안에 호흡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틈을 조명하고 그 속에 내포된 다층적 순간을 함께 상상하고자 한다.


전시장에 들어와 기존 방식으로 관람함과 동시에 잠시 시선을 멈춰 공간과 시간의 미세한 어긋남, 틈을 마주하길 바란다. 그 틈에는 작품이 물리적 공간에 축적될 수 있는 기본 조건이자, 더 중요하게는 기획자와 함께 협력한 전문 인력들의 생각, 노동 생산물, 전시 준비 과정 등 당연해서 잠시 주목하기를 미뤄두었던 상황과 조건들이 자리한다. 본 전시에서는 관객이 전시장 안에 구현되고 시각화된 물질을 보고 전시생산자들의 행동을 역으로 추적해 보며, 전시 공간에 내포된 비시각화된 주체들의 시선과 감정까지 유연하게 감각해 보길 유도한다. 그렇게 전시 공간의 전통적 개념과 물질성 너머 그 주변에 구획되지 않던 요소를 다루는 작업을 통해 전시 공간의 우위를 전복시켜본다. 이러한 맥락에서 세 작가는 미술관, 전시장, 전시를 각자의 관점과 방식으로 관찰하고 각기 다른 매체로 자유롭게 응용한다. 관객은 전시생산자들이 연출한 전시와 전시 공간에 부유하는 틈의 형상을 자의적으로 해석해봄으로써 ‘틈’이 내포한 다양한 의미에 집중해 볼 수 있다.


구수현은 
미술 현장에서 작가 이외의 다양한 포지션으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전시장 공간을 구성하는 물리적 조건, 그 안의 내재한 제도, 노동을 소재로 작업한다. 미술관이라는 물적 공간에서 전시 관계자/외부인 입장으로 건축 공간을 감각하고 인지할 때 발생하는 심리적인 요소를 근간으로 공간을 재구성해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시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실제 대상과 사진 이미지 속 대상의 개념적, 물리적 틈을 포착한다. 그는 미술관 전면과 주변의 조명, 흰 벽, 온습도계, 전시장 지킴이, 소화기와 같은 소재로 공간을 차분히 메꾼다. 조명 영상은 전시장 내부의 시각언어를 상기시키며, 면밀히 보지 않으면 실제 레일 조명과 병치된 장면을 놓치기 쉽다.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된 흰 벽 이미지는 시트지로 재현되고, 페인트 자국은 곳곳에 흩뿌려져 있다. 온습도계는 전시장에 존재하지만 시각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물질로 공간 안에서 시각적으로 인지하기 어렵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제작한 이미지와 기성품 오브제는 병치되어 전시장 내 각 요소의 기능을 다시금 인지시킨다. 나아가 그는 작품과 작품이 아닌 것, 실제 물질과 이미지가 되어버린 것을 함께 두며 개념적으로는 충돌하지만 서로 짝을 이룰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가시화한다. 작가는 전시장에서 찍은 피사체가 작품이든 주변 것이든 결국 디지털 이미지로 형식이 변환될 때 하나의 이미지 데이터일 뿐이라는 현상에 집중한다. 소화기 원재료인 스테인리스로 좌대를 제작해 이미지를 비스듬히 걸쳐둬 또다시 전시장 내부에 자리한 암묵적인 위계질서를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작업 연출 방식으로 작가는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세계와 그 안에 숨겨진 물성 개념을 인지하여 규정하고 구별 짓는 것을 멈추게 함으로써 공간 내 위계와 순서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관객은 시선을 멈춘 사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환영을 경험하며, 작가가 제안한 ‘있어도 보이지 않고, 보여도 있지 않은’ 무언가를 발견해 본다.


김방주
 작업은 예술가라는 직업인이 늘 전시를 위해 실행하지만, 전시장에서 생략된 설치, 철수 과정과 그 안에서 발생한 여러 관계를 보여줌으로써 비가시적인 관계, 과정의 틈을 엿보게 해준다. 이번 작업 또한 그 연장선에 있으며, 그는 전시 준비 시작일(2022.1.1.)부터 개막일(2022.2.18.)까지 서울에서 종료한 전시 5건에 철수자로 참여해 각 전시 공간들을 경험한다. 이번 <000으로부터>는 각 전시장 철수 과정에서 발굴하고 획득한 물질과 텍스트를 병치시킨 작업이다. 전시장 내부에 파편들이 물성 기표로서 자리하며 이는 철거 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관계에 대한 일종의 증거, 흔적으로서 대변한다. 사루비아 다방에서 열린 최윤희의 《먼 처음에게》에서 가져온 벽체와 회화,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가져온 윤지영 작가 작업의 실리콘 덮개, 고운 모래는 겹겹이 쌓여 새로운 적재구조물 형태로 전시장에 존재한다. 영호 작가의 이발 퍼포먼스에서 가져온 정육면체 스펀지와 머리털은 곳곳에 쌓아두고 숨겨두며 설치 작업 구조물을 지탱하고 있다. 기물 곳곳의 흔적은 《영호 개인전》에서의 이발 퍼포먼스를 담고 있다. 김방주는 페리지 갤러리에서 정혜정, 유은순 전시 결과물 중 의자, 좌대를 가져와 전시장 곳곳에 구조물 및 쉼의 공간으로 기능과 쓰임을 부여한다. 차지량 작업의 일부인 양면테이프와 쫄대는 두 작가가 맺은 관계를 상징하는 지표로서 기능하며, 전시장에 곳곳에 작게 뒤엉켜 있다. 김방주의 신작에서 철수 후 버려지던 부산물, 폐기물이 재활용됨으로써 특정 서사를 전달하기보다 작업이 전시장 안으로 들어오고 나가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해석해볼 수 있다. 갤러리 담당자, 작가, 철거된 폐기물과의 관계처럼 작업 과정에서 쌓은 연결점은 전시장 안에서 시각적으로는 부재하지만 기의로 작동한다. 그가 보낸 시간과 과정은 시각적으로 볼 수 없을지라도 일련의 과정이 대체물을 통해 전시장에서 유령처럼 존재하고 있다.


이주연 영상과 드로잉, 텍스트를 통해 외로움과 고립이 가지는 정치적인 영향을 기록하고 시각적으로 구성하는 작업을 한다. 그중 미술관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 노동자에 대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영상 <흰담비들>은 미술계의 불확실한 고용현황과 조건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본 기획자가 《멈춘 시선의 틈》에서 설정한 미술계 내부에 존재하는 암묵적인 위계와 체제인 틈새를 잘 보여주는 작업으로 관객의 시선을 고정한다. 이 작업은 작가가 실제로 미술관에서 일했을 당시 동료들과 진행한 인터뷰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작가는 미술계 젊은 인력들이 마주한 불합리한 현실과 소설에서 발췌한 구절을 영상에 담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영상 속 인물들은 노동의 안에, 지급의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에 용돈을 벌기 위해 흰 담비를 사냥한다. 이는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일을 하는 현실을 허구인 듯 보여준다. 작가는 “단기 계약과 시간제 일거리를 옮겨 다니는, 고등 교육을 받은 젊은 여성 노동자들이 흰 담비 코트를 입은 소녀일 수도 있지만, 자기 자신이 코트의 재료가 되는 흰 담비일 수도 있다”라고 서술한다. 영상 작업과 동일한 작업명의 <흰담비들> 드로잉 6점은 영상 속 일부 장면을 담고 있다. 그는 밤에 흰 담비를 사냥하는 젊은 여성들의 모습, 케이지, 피를 흘리는 손, 포획한 흰 담비, 야행성 새 무리가 앉아있는 나무 등을 그렸다. 영상 속 인물이 흰담비 사냥을 위해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것과 유사하게 본 기획자는 관람자들이 어두운 전시 공간에서 손전등을 비추어 드로잉을 관람할 수 있게 설치했다. 그의 작업은 미디어에서 재현하는 미술관의 아름다운 작품이 온전히 있기까지 실제로는 다른 많은 사람의 노동이 필요하다는 현실을 보여주며, 투명 인간처럼 일해야 하는 젊은 여성 노동자들의 실태를 담담하게 꼬집는다. 


크레딧은 전시관계자들에게 자신을 증명하고 다음 단계로 진출하기 위한 필수 증빙 요소로서 모두에게 중요한 기록이자 징표임에도 보편적으로 도록, 리플릿에 한 줄로 적히거나 때론 지워진다. 이렇게 소외된 크레딧을 해체하고 재서술해 전시장 한편에 전면 확장하고 시각화함으로써 전시 준비 일련의 과정이나 참여자들의 노고를 세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미술계 종사자들이 만들어낸 산물과 작업 과정을 시각화한 아카이브를 통해 전시 제작에 참여한 이들의 작업 과정과 직업인으로서 이들이 처한 상태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기존 전시와 프로젝트의 크레딧에서 보이지 않는 노동과 기회를 알리고자 한다. 그동안 전시장과 전시 도록에 기입된 준비 과정은 최대한 편집되고 버려진 장면이었으나 본 전시에서 이 과정을 복기함으로써 전시의 의미를 되살린다. 



《멈춘 시선의 틈》에서 ‘틈’ 은 기획자가 시각예술 분야에서 ‘어시스턴트’란 다소 미끄러진 위치에서 전시를 준비하며 느낀 감정과 경험을 반영한다. 전시 개막 이후 크레딧 이슈로 비슷한 상황과 결과가 반복되는 현실에 미세한 불편함을 느껴 목소리를 내고자 했다. 전시 뒤편에 자리하던 주제를 끄집어냄으로써 미술계 구조나 상황이 빚어낸, 개인이 당면할 수밖에 없는 미세한 ‘소외’와 ‘불편’을 함께 인식해 보고자 한 것이다. 덧붙여서, 어느 시대, 장소든 시각예술은 지속되고 기록되기 때문에 크레딧이 가진 의미와 무게는 늘 유효할 것이다. 자의적으로 벌려 놓은 틈에 시선을 고정함으로써 늘 당연히 존재했지만 특별하지 않아 놓치기 쉬웠던 것들을 응시해 볼 수 있다. 크레딧 아카이브를 통해 미술계와 전시 구조를 살펴보고, 전시장에 오기까지의 작가와 작업의 흔적을 따라가고, 전시 공간 주변 요소를 하나의 조각들처럼 모아 이 틈을 메꾸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