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rative Space

2021. 7. 7 - 2021. 7. 13 


류정현  문지원  박현정  원소영  이재윤  장자현 



장소 | 온수공간
관람시간 | 1 - 7 PM, 휴관일 없음
기획, 글 | 이유진
포스터 디자인| 구선민




별도의 오프닝은 없습니다. 
* 마스크 착용 및 출입기록부 작성 필수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인간은 또 다른 존재들과 필수 불가결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 관계는 이따금 상호적이며, 종종 한 쪽이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양을 취한다. 다양한 관계 속에서 만족을 얻으면서도 때로 상실과 그로 인한 슬픔을 겪게 되는데, 그렇게 비슷하거나 다른 성질의 주체들과 공생하는 인간에게 경험은 필연적 산물이다.

여기에 모인 여섯 명의 작가들은 그들이 맺은 관계에 대한 경험을 공유한다. 관계의 대상은 사람이거나 동물, 나아가 인간이 가장 의존해서 살아가는 자연에까지 이른다. 이들이 공유하는 기록은 관람자가 이미 비슷하게 경험한 것일 수도, 겪어보지 못했지만 동경해온 순간일 수도, 또는 앞으로 겪게 될 모습일 수도 있다. 어떤 형태든, 관계를 탐구하는 작업은 공감과 대리만족을 일으키는 동시에 미지의 영역에 대한 상상력을 배가한다.

예술로 재현된 관계의 경험은 회화로, 조각으로, 설치 및 영상으로 보여지고, 작가의 기억은 잠시 뒤로 물러난 채 관람자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 자리가 된다. <Narrative Space>는 이야기가 발생하는 자리로서, 여섯 작가의 작업으로부터 파생되는 서사를 기다리는 전시이다. 저마다의 시선으로 자유롭게 유영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자아내는 이곳이 무해한 사유의 자리가 되길 바란다.





류정현은 캐스팅과 수집이라는 행위를 통해 시공을 초월한 기억 방법을 제시한다. 태곳적 자연으로부터 물려받은 감각은 경험 속에서 기억이라는 산물을 낳게 되는데, 다양한 도구들이 넘쳐나는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그 편리함으로 인해 원초적 감각을 차츰 잃어간다. 이러한 맥락에서 연흔 캐스팅 작업 <흔적, 조각기억>은 퇴화해가는 감각과 감성을 되살린다. 바다에 대한 기억은 <시선, 196기억>에서 탑의 형상으로 쌓아 올려지며, 그 여정은 다시 얇은 천 위에 수놓아진다. 복잡한 형태의 선을 따라 바늘의 끝을 좇다 보면 희미하게 머무르는 지난 시간의 이미지들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의 바늘이 운행을 마치는 지점인 바닷물을 수집했던 장소들은 자연이 허락한 찰나이며 태고에 머무르는 순간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수놓는 작업은 기술과 정서라는 벌어진 틈새 사이 균형을 잡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문지원은 말 없는 순수한 생들이 척박한 세상으로 오고 떠나는 섭리에 주목하며 인간의 부정적 개입을 인지하고, 이에 대한 무관심을 통감했다. 종에 상관없이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과 삶을 순수라 칭할 때, 세상에 불순수는 인간뿐이며 이 불순수는 순수와 완벽히 공생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작가는 괴로움에 머무르기보다 이러한 절망을 안고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자연의 일부 및 그들의 동류가 되고자 무수한 생들이 갖는 교집합을 찾아야 했고, 곧 순수와 불순수를 아우르는 물자체로 목(木)에 주목했다. 그는 나무 단면의 순환하는 결을 통해 木의 골수가 지닌 생의 축적을 기록한다. 이를 관조하는 자리가 불순수라는 불명예를 가진 인간이 동류를 보듬으며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면서.

박현정에게 익숙한 것은 그야말로 기형적이다. 그가 그려내는 기형의 형태와 감각은 소위 정상적이라 불리는 개념을 해체하고 재정의한다. 흔히 말하는 ‘일반’, ‘정상’, ‘기준’을 벗어난 것들의 집합체 전부를 아우르는 ‘기형’은 대체로 불균형적이고 불편한 감각을 전가한다. 그러나 작가에게 익숙한 기형적 특성은 친숙한 인물들로 표현되어 우리 주변 기형적 존재들에 관해 성찰하는 시간을 선사한다. 가령, 잘려 나간 손과 성별을 알 수 없는 양성의 인물들은 구분이란 무엇인지, 뚜렷한 경계는 과연 필요한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작품을 관망하는 순간은 낯설고 불쾌할 수도, 도리어 편안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원소영은 <2018 0621 PM 1:00>를 통해 작가 본인이 가진 강박의 경험을 공유한다. 보이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의식대로 시선화 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은 도로 위 움직이는 대상들로 인해 파편화된다. 하나, 둘부터 열까지 세는 숫자에서 편집증적 습관이 드러나는데, 이때 평범한 일상 속 한 장면은 작가가 치르는 의식으로 대체된다. / <Open-air_exhibition_prototype>에서 작가는 의례적 공간으로 구축된 장소에서 벗어난 새로운 전시 프레임을 제안한다. 물리적 임계점을 넘어 설치된 작품들은 어느 곳에서나 새로운 관념의 공간성을 구현할 수 있다. / <선-선> 작업에서는 과거 어머니가 읽었던 책의 밑줄을 따라가는 작가의 시선과 더불어 시선 간 부딪힘에 대한 대화가 이어진다.

이재윤은 관계 속 상실의 세계를 탐구하고 이를 회화로 표현한다. 상실을 거듭하며 희미해진 기억의 파편은 어쩌면 솔직하지 않은 모양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계속 들여다보는 것은 아픈 조각을 붙들어야만 나아갈 수 있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자세한 맥락이나 복합적인 사정이 지워진 채 단순한 장면으로 남은 순간의 기억은 그림 속 인물 간의 관계에 대한 여러 시선을 유발하며, 회상을 통한 감정의 주체 또는 제삼자로서의 감각의 공유를 유도한다. 더불어 이번 작업에 포함된 이재윤의 시집 «시린 날의 이불»은 작가의 드로잉 작업과 맥락을 같이한다.

장자현은 도자 작업을 하며 흙 본연의 상태에 집중한다. 그는 재료로 사용하기 이전의 가변적인 흙이 본디 크고 작은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생태계임을 상기하기 위해, 제자리를 되찾아가도 이질적이지 않을 작업을 한다. 즉, 작가라는 인간뿐만 아니라 같은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물이 사용하는 자연의 재료임을 인식하여 그들을 따라 견고한 보금자리를 만든다. 제비와 벌, 그리고 새의 흙집 형태를 관찰하고 비슷한 형상으로 흙을 쌓아 올리는 과정은 인간과 자연이 맺는 상호 관계의 재현이다. 한편, 테라스 위의 말은 경주마와 달리 자신이 갈 곳을 차분히 응시하며 서 있다. 경주로를 벗어난 야생마는 비로소 생각하기 위해 달리기를 멈춘다. 이처럼 자연의 것을 보금자리로 돌려보내는 행위는 다른 존재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글 이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