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  𝚃𝚛𝚊𝚌𝚒𝚗𝚐 𝚘𝚗 𝙴𝚖𝚙𝚝𝚒𝚗𝚎𝚜𝚜



2020. 12. 16 - 12. 31

임재형 개인전




관람시간 | PM 1 - 7, 휴관없음
장소 | 온수공간 2-3F 
기획 | 김유빈, 임재형
후원 | 서울문화재단, 서울특별시
시공 | 정진욱
설치 | 김대유, 정진욱
디자인 | 둘셋


* 별도의 오프닝 리셉션은 진행하지 않습니다.
* 12월 16일(수) 오픈일의 관람시간은 오후 5시부터입니다.








뱉어내는 순간 더 이상 지킬 수 없게 되는 것이 있다. 뱉어진 언어들 사이에서 정처없이 배회하는 것을 더 이상 감싸 안을 수 없게 되는 경우다. 옅고, 고요하고, 그래서 느리게 보이는 임재형의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을 때면, 그가 뱉지 않고 머금은 언어를 보호해보려는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임재형은 함부로 뱉고 싶지 않기에, 여러 방식으로 숨긴다. 단박에 언어화하는 것이 힘에 부쳐 사유의 방식을 여러 겹 쌓아 숨기는 편이 오히려 수월한 것인지, 작가는 그림을‘보는 것’에 대한 은근한 단서를 즐겨 남기곤한다.
그의 작업에서는 대체로 보이는 것 너머 미세하게 가려진 것들의 겹을 발견할 수 있다. <평형>을 마주할 때면 어슷하게 재단된 배경이 눈을 사로잡는데, 그것에 담긴 바다의 수평선은 정형화되지 않은 배경을 어느 순간 잊게 할 만큼이나 고요하고 가지런하다. 수평선을 잊을 정도로 가까이에서 볼 때면 무수히 난 조각칼 자국이 마치 바다에 난 상처처럼 보인다. 이 상처는 맞은편에 걸린 바다에 와서 흉터로 남았다. <어떤 시계> 역시 얼핏 봤을 때 불안정하다. 판자국(plate-mark)만 기울었을 뿐, 액자는 바로 잡혔고 기울여 그린 시계는 다시 제 방향을 찾았다. 여기서 옆으로 흐른 물감 자국은 애초에 이를 기울여 그렸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나는 흐르는 물감을 온전히 지켜봤을 임재형의 시간을 떠올려봤다. 시계가 물에 잠기기까지 기울어진 ‘108.1도’에 맞춰 다시 돌려낸 것을 바라보고 이를 자국으로 남기는 침묵의 시간들.
언급한 작업들이 판화의 작동 기제를 고려한 것이라면, <시든 붓질>과 <대설>은 한번 그린 작업을 ‘다시 그리는’방식을 취했다. 유동적인 재료로 빠르게 그린 적 있는 작업의 일부를 확대하여 종이에 다시, 연필로, 건조하게, 구태여, 느리게, 이전 재료의 물성과 질감을 성실히 살려 그렸다. 각 작업의 소재인 시든 식물과 눈송이는 이미 어느 시간을 보내고 사라지거나 이내 사라질 대상이다. 이번에는 마른 것을 수성재료로 그려 흐르는 자국으로 남기는 것, 내리는 눈이 조만간 녹아 없어지기 전에 꾸덕한 물감으로 남기는 것, 그리고 이것을 기록한 그림의 물성을 훗날 다시 연필로 재현하는 임재형의 시간을 상상해봤다. 끈질길 정도로 축적된 시간들.
그가 더듬어 그리는 시간이 두터운 층위로 구조화될 수록, 감상자는 작가에게 곁을 준 것들을 더 느리게 더듬게 된다. 임재형이 남긴 일련의 허물들은 과거를 허투루 재단하거나 일말의 언어로 소모하지 않으려는 듯 차분히 쌓여있으며, 우리는 이를 통해 그가 떠낸 시간의 틈에 더 가까이 개입해본다. 또 하나의 예시로 최근 작가에게 주어진 낯선 시간을 언급해본다. 사람이 있어야 마땅한 집이 비어있던 적이 있었다. 거처를 막 옮겨 나간 대상이 빈 집에 남긴 흔적은 그날의 작가에게 피사체로 남았다. 임재형이 지금에 와서 채집한 이미지를 다시 꺼내 그리는 것은 그가 <마지막 집>에서 만난 틈을 고스란히 길어 곱씹어보려는 행위다. 이번에는 다시 어두운 바다를 이야기한다. 앞서 언급한 ‘평형한 바다’는 멈춘 시계바늘이 가리키는 시간이 남긴 상처를 품었다. <먼 곳의 빛>에 담긴 것은 바다에 서린 어떤 빛이다. 수면 위의 빛을 하나씩 헤아려 그리니 역설적으로 또다른 실루엣이 드러난다. 소실되는 빛과 이에 대응하여 떠오르는 어둠은 사실은 무한히 반복하는 것인데, 임재형은 이 견고한 질서의 틈에 개입하는 방식으로 머물던 시간을 잠시 붙잡아본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 두었다가 글로 남기는 지금에 와서야 그의 앞에 놓여있던 그 때의 시간을 되짚어본다. 그리고 그가 이를 그림으로 남긴 또다른 허물을 바라보며 그릴 때의 작가가 투영했던 감정과, 그럼으로써 소진되는 에너지, 또 그러한 과정 중에 새롭게 생성되는 또다른 허물들-낱말로 읊조려볼 수 있게 되거나 잡음으로 남은 언어들-을 떠올린다.
임재형이 남긴 갖가지 ‘허물’은 마주했던 시간들을 온전히 붙잡아 두려는 작가의 고민을 가시화한다. 임재형은 그리기를 통해 ‘없음’을 둘러싼 주변부의 것들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자신의 태도를 복기(復棋)해보려 한다. 부재를 마땅히 재현하는 것의 의미를 밀도 있게 들여다보기 위해 그리기의 당위성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명확히 할 수 없더라도, 지나 없어진 것의 자취를 더듬어 그에 알맞은 감각과 표현 방법을 주물해보기 위해, 그린다.
임재형은 이렇게 그리는 방식으로 침투하여, 이미 뱉어져 유랑하는 것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기려본다.

김유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