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ZZY CRYSTALS




2020. 11. 24 - 12. 12

박지희 개인전



장소 | 온수공간 1F 
관람시간 | PM 1 - 7, 휴관없음
후원 | 서울문화재단, 서울특별시
디자인 | 멀멀스
글 | 윤하나








The Fuzzy Crystals

오늘날 우리는 ‘복사(copy) - 붙여넣기(paste)’를 통해 선택적으로 원하는 것을 내 것처럼 소유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복제의 과정이 반복되면서 어느새 원작의 맥락과 역사가 사라지고 알맹이 없는 껍데기가 유령처럼 남곤 한다. 전시제목 《퍼지 크리스털 The Fuzzy Crystals》은 조각가가 투명한 크리스털을 만드는 과정에서 재료의 배합이나 환경이 맞지 않아 의도치 않게 발생하는 불투명한 결정을 뜻하는 말이다. 이번 전시에는 특정 지역에 독특한 다른 문화들이 유입되어 혼재되는 과정에서 파생된 돌연변이, 그리고 외형만 남은 유적과 그 위에 재생산되는 혼종의 문화를 가리킨다. 전시는 1930년대 영화산업의 호황기를 누린 초창기 할리우드의 유산인 유럽풍 아르누보 건축물과 한국계 이민자의 대규모 커뮤니티 형성, 이후 라틴계 인구의 유입 과정 등 LA 지역을 둘러싼 한 세기의 역사를 도시건축과 음식산업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조각가의 방식으로 시각화한 결과물이다. 그간 작가 박지희의 주된 관심사인 시공간의 재생에 관해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문화현상을 조각가적 관점에서 해석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LA 한인타운의 독특한 문화재생 과정을 추적하고, 이를 둘러싼 역사적 사실과 실제 지역을 탐험하며 느낀 감각적 경험 간의 충돌을 통해 복제와 복원을 통한 재생에 관해 이야기한다. 

  작가가 관찰한 2019년의 LA는 수십 년을 주기로 다양한 문화가 유입되며 형성된 멜팅팟, 일종의 무지개떡 도시이다. 캘리포니아의 핑크 빛 노을 하늘 아래 코를 자극하는 김치타코 푸드트럭, 아르데코 양식의 건축물 위에 자리 잡은 ‘삼성’과 ‘소주방’ 옥외간판 등. 박지희는 도시를 이루고 있는 이러한 복합적 외형들을 수집하고, 이를 형틀로 만들어 다양한 재료로 복제하는 과정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지질학적 단층을 조각과 드로잉 작업으로 재구축했다. 불완전하게 표면으로 남은 그의 조각들은 안쪽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며 기이한 문화재생 현상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이를 통해 작가는 그만의 시선으로 원류를 향한 인간의 동경과 그 간극의 틈을 파고든 이종 문화의 독특한 합류지대를 재발견하고, 이에 나아가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충돌하는 오늘날의 사회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사유해볼 것을 권한다. 

소고기 지방과 요식업장의 폐기름, 케첩, 향신료 등 다양한 유기적 재료를 활용해 아르데코 풍 장식재의 겉 표면으로 떠낸 유토 조각 <Single O>, LA 의 건축적 청사진과 이를 위해 종횡무진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여러 주체들을 형상화한 <Fragments of the Good Old Days> 시리즈 등을 통해, 작가의 관점으로 바라본 도시의 원형과 이를 유지-계승하려는 코리아타운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전시에 소개되는 모든 작품 제목은 할리우드가 한창 부흥하던 1930 년에 제작된 공상과학 영화 ‘Just Imagine’ 에서 차용한 것으로, 1930 년대에 상상한 1980 년의 뉴욕을 코믹하게 드려낸 유성흑백영화다. 작가는 'Just Imagine' 을 모티프로, 과거-현재-미래의 시공간을 관통하며 일어나는 문화적 합성과 충돌에 접근하고, 이를 감각적으로 감지하고 이해할 수 있는 단서들을 유희적 상상력으로 전달한다. 


윤하나 독립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