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ㅡ톡 Tic-Tock

2019. 8. 15 – 8. 31


이정식 장서영 정희승 차재민 홍기원



기획 | 유은순
후원 | 서울문화재단
장소 | 온수공간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76-7)
관람시간 | PM 1-PM7 (월요일 휴관)




《틱-톡》은 만성질환자 혹은 아픈 사람이 처한 상태에 주목하고, 건강한 비장애인으로 구성된 사회라는 스테레오타입에 질문을 던지는 전시이다. 전시제목 ‘틱-톡 Tic-Tock’은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불규칙적인 근육의 움직임을 보이거나 비자발적으로 소리를 내는 틱(Tic) 장애와 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Tick-Tock)를 합친 것으로, 한 개인이 고통 받는 몸, 비정상적인 몸 상태에 의해 스스로 아픔을 자각하는 상태를 뜻한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끊임없이 째깍거리는 시계소리처럼 매 순간 자기 자신에게 닥쳐오는 실존의 상태로서 질병을 의미한다. 전시는 돌봄을 받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아픔을 삶의 조건으로 수용하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신체의 컨디션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존재로서 아픈 사람의 경험을 다룸으로써 ‘정상적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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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연계 강연프로그램

2019. 8. 25 (일요일) PM 3-5
온수공간 (서교동 376-7)
신청기간: 2019. 8. 6 - 마감시
신청인원: 15명
신청방법: 구글폼 신청 (https://forms.gle/dx8P9QmN9n6CxUnk7)
강연자: 전혜은 (퀴어 페미니즘 장애학 연구자)


제목: 단절, 침범, 연결: 아픈 삶의 지도 그리기
내용: 단절, 침범, 연결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를 경유하여 아픈 사람의 삶을 얽어 짜는 복잡하고도 다양한 매듭을 더듬어 지도를 그리고 새로운 교차로를 함께 모색해본다.



강연자 소개
퀴어 페미니즘 장애학 연구자.
서울대여성학협동과정에서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저서로는 『섹스화된 몸: 엘리자베스 그로츠와 주디스 버틀러의 육체적 페미니즘』, 공저 『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가 있다. 여성건강, 퀴어 페미니즘 장애학, 퀴어이론을 강의해왔고 퀴어 연구자 및 활동가 모임 Beside Collective에서 Beside 포럼을 공동 기획 중이다. 퀴어와 장애와 질환의 엮임에 관심이 많은, 18년째 아픈 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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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진단: 포지티브 


1. "지금은 괜찮아? 완치된 거지?" 진심으로 걱정하며 묻는다. 하지만 막상 여기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다. 모든 치료는 끝났으니까 완치라고 봐도 되는 걸까, 하지만 5-10년 내에 다시 발병할 우려가 있으니 안 괜찮은 걸까. 일에 복귀하였으니 괜찮은 걸까. 하지만 건강을 디폴트값으로 둘 수 없는, (잠재적인) 아픈 사람이니 안 괜찮은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질문에 대한 답은 언제나 모호하게 흐려지기 마련이다. 

의학적인 규정에서 환자였던 기간은 1년이 채 되지 않는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예약에 맞춰 병원을 방문하고,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고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식단을 조절하고 적당량의 운동을 하였다. 큰 부작용 없이 치료를 마쳤다. 1년의 휴직 후 복직하여 이전의 루틴을 되찾는 데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은 때때로 그 경험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만, 도대체 그 경험에서 무슨 이야길 할 수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단지 한 개인의 독백일까, 경각심을 일깨우는 경고일까, 동정심을 유발하는 대화일까, 누군가에게 도래할 예언일까. 

경험을 말로 풀어내려는 시도는 빈번하게 실패했다. 낯선 것을 발견한 시점부터 확진을 받고 주변인들에게 알렸던 10여 일의 시간은 생생하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질병을 겪어낸 그 기간은 말을 하면 할수록 비워졌다. 질병을 겪은 후에는 질병을 겪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점만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전과 지금이 같은 상태이길 바랐다. 

"지금은 괜찮아? 완치된 거지?"라는 질문은 더는 아프지 않길 바란다는 희망의 표시였지만 동시에 그것은 아팠던 과거를 부정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 말을 듣고 난 후에는 계속해서 괜찮았던 상황만을 변명처럼 늘어놓았다. 부작용도 별로 없었어. 밥도 잘 먹었고 잠도 잘 잤어. 오랜만에 쉬니까 좋더라. 질병을 처음 고백할 때 주변인들을 달래는데 적극적이었던 것처럼, 치료 후에도 주변인들의 걱정을 소거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외부환경에 더욱 민감해진 신체, 재발에 대한 두려움은 지금의 건강해 '보이는' 신체로 가려졌다. 누구와도 공유되지 못할 것만 같은 구멍 난 경험은 꽤 오랫동안 그대로였다. 치료 기간만큼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이름 붙여지지 않았던 이 경험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2. 한 사람이 자신의 몸에 이상을 느껴 병을 진단받고 치료를 결정하게 되면 그의 신체는 개별성을 잃고 완치가 유일한 목표가 된 병리적 신체가 된다. 개인은 낯선 용어와 생소한 검사에 익숙해져야 하고 자신의 일정을 병원의 일정에 맞추어야 한다. 또한 개인은 자신의 몸을 의학에 내맡겨야 한다. 그러나 의학은 치료로 인한 생활의 변화(경제적 어려움, 휴직, 휴학 등)에는 무신경하다.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나 부작용은 심인성으로 진단받고, 질병의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경우 개인의 생활습관, 스트레스가 원인을 대신한다. 이로 인해 개인은 신체의 비정상적인 상태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으로 인해 고통받곤 한다. 

다른 한편, 사회적 측면에서 질병은 사회비용 증가와 노동인구 감소와 직결된다. 사회는 질병으로 인한 공적 비용을 줄인다는 목적으로 천문학적인 예산을 지출하면서 유전학을 통한 질병 예방을 연구하고,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노력하며 보험을 권장한다. 예방은 사회가 질병을 논의할 때 가장 선호하는 방법이다. 질병에 걸린 몸은 사회적 효용성이 없는 몸이자, 돌봄을 필요로 하는 수동적 존재로 간주된다. 여기서도 아픈 개인의 구체적 삶은 논의될 자리가 없다. 

질병의 경험은 흔히 문화적 영역에서 개인의 투병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나 에세이로 접하게 된다. 대부분은 개인의 치열한 노력과 주변인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인해 질병을 극복한 승리 서사로, 혹은 고결한 삶에 닥친 비극 서사로 다루어진다. 두 서사 모두 건강한 사람들에게 삶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그러나 이러한 서사는 완치와 죽음이라는 결과로만 질병을 다룬다. 모든 질병에 완치를 전제한다면 아픈 사람은 단지 복귀가 지연된 사회구성원일 뿐이고, 따라서 이들의 경험은 결과에 의해서만 판단되고 과정은 생략된다. 

『틱-톡』은 의학적, 사회정치적 측면에서 질병을 다루지 않고 개인의 사적인 경험으로부터 질병의 경험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동시에 질병에 부과된 도덕적, 문화적 편견이나 은유로부터도 거리를 둔다. 전시는 완치와 죽음의 경계에 위치한 삶에 주목하고 아픔을 삶의 조건으로 수용하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신체의 컨디션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존재의 경험을 다룬다.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삭제된 개인의 시간을 복구하고 의학적, 사회적 측면에서 다루지 않는 증상과 경험을 예술의 영역에서 복권하고자 한다.


3. 전시제목 '틱-톡 Tic-Tock'은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불규칙적인 근육의 움직임을 보이거나 비자발적으로 소리를 내는 틱(Tic) 장애와 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Tick-Tock)를 합친 것으로, 한 개인이 고통 받는 몸, 비정상적인 몸 상태에 의해 아픔을 자각하는 상태를 뜻한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그때부터 들려오는 째깍거리는 시계소리처럼 매 순간 자기 자신에게 닥쳐오는 실존의 상태로서 질병을 의미한다. 

전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층은 사회적인 범주에서 논의되지 않는 아픈 사람의 개인적인 경험에 주목한다. 경제성장과 자아실현을 위해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사회에서 아픈 사람은 목표를 상실한 상태로서 아프지 않은 사람들과는 다른 시간성을 경험한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질병에 대한 경험은 우리가 다른 목표를 앞세우며 잊어왔던 몸의 발언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기회이다.






이정식(b. 1987)은 2015년부터 지금까지 HIV 치료제인 스트리빌드 복용을 잊지 않기 위해 매일 약 먹는 시간을 기록하고 이를 「nothing」 연작으로 제작해 왔다. 비정형적인 도형으로 메꿔진 공백은 약을 먹지 못한 시간을 의미한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약 섭취를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시간의 주체가 되고자 한다. 「ox」는 작가가 전시 기간 동안 전시장에 찾아와 약을 섭취하거나 섭취하지 않는 행위를 선택하고 이를 영상으로 남기는 퍼포먼스, 영상 작업이다.


2층은 개인의 경험을 타인과의 관계와 세계로 확장 시킨다. 질병은 개인과 주변을 둘러싼 공동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경제적인 이유나 사회의 편견에 따라 개인은 때로는 자신의 병을 숨겨야 하고 때로는 자신이 아픈 상태임을 증명해야 한다. 불확실한 컨디션 속에서 자신의 몸을 다스리며 주변과 소통하는 문제는 때로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낯선 것을 다루는 일보다 어렵다. 한편 아픈 사람을 돌봐야 하는 이들도 아픈 사람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자신의 삶과 돌봄을 적당히 타협해나가는 과업을 수행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나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질병은 모두에게 도래할 수 있는 미래이다. 

「김무명」은 죽음마저 익명으로 남겨져야 했던 HIV 감염인의 죽음을 계기로 만들어진 책이다. 이정식은 감염인들의 경험을 수집하여 글로 정리하고 각각의 감염인과 관계된 사물을 찍은 사진을 글과 함께 싣는다. 그리고 작가는 비감염인 동료들에게 감염인의 글을 필사하도록 부탁한다. 작가는 글을 옮기는 짧은 시간이나마 비감염인이 감염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길 바란다.




장서영(b. 1983)은 오작동하는 신체를 영상매체의 납작한 화면과 매체의 속성에 비유한 영상작업을 선보여 왔다. 「Keep Calm and Wait」는 모니터에 '기다려주세요', '당신이 호명될 때까지', '당신은 명단에 없습니다'라는 세 문장이 계속 반복되는 작품이다. 호명을 통해 무언가가 해결되기를 기다리지만 호명은 계속 지연된다. 따라서 그것은 해결될 수 없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도 없다. 「스핀-오프」는 정상적인 삶에서의 이탈과 반복을 다룬다. 레이싱의 반복이 갱신과 상승을 의미한다면 서킷에서 이탈한 반복은 중단과 침입이다. 후자는 화자의 언급처럼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시간 구조"이자 "그 안에 있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정희승(b. 1974)은 재작년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하면서 2007년 폐쇄된 광주국군병원을 촬영하길 요청받았다. 2018년이라는 시점에 1980년 5월의 광주를 2007년부터 방치되어 폐허가 된 장소에서 찾는 일은 녹록치 않았고, 작가는 역사적 사건과 좁힐 수 없는 간격을 실감한다. 그리고 1년 뒤 자신이 촬영한 사진을 돌이켜보며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사진의 디테일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작가는 사진의 일부를 크롭하거나 확대하여 「기억은 뒷면과 앞면을 가지고 있다. 제 2부」를 제작한다. 작업은 공유 불가능한 경험과 보는 것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동시에 온수공간 내부와 작품과 작품 사이를 가로지르며 시간과 공간의 연속성에 개입한다.





차재민(b. 1986)은 사회적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불편함을 드러내는 영상작업을 해왔다. 「보초 서는 사람」은 사회적 영역과 사적 영역 간의 잠재적인 충돌과 분열에 주목한다. 이 영상은 신입 야간 경비원이자 누군가를 돌보는 부양자인 주인공이 경비 교육을 받는 장면, 야간 순찰을 도는 장면과 때때로 걸려오는 전화에 응하는 장면을 교차시킨다. 건물의 적막함과 어두움이 가져다주는 긴장 속에서 건물의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과 누군가를 돌보는 역할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서로 오버랩된다. 아무런 이유 없이 쓰러지는 플라스틱 의자나 밀대, 갑작스레 끊어지는 전깃줄은 반복되는 일상에 불쑥 개입하며 불안을 가중한다.




홍기원(b. 1978)은 신체에 익숙한 행위나 태도를 깨뜨리는 키네틱 설치작업을 선보여 왔다. 2016년부터는 개인과 그를 둘러싼 환경과 문화 사이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불화를 드러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변주곡 1-1」은 기수가 사용하는 채찍을 본떠 만든 청동주물이 일정한 간격에 따라 타종되며 울림을 만드는 키네틱 설치 작업이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총성이 경기를 위해 혹독한 관리와 훈련을 받다가 작은 부상만으로도 폐사되는 경주마의 운명을 가르듯이, 작품의 종소리는 사회의 치열한 경쟁과 그 속에서 언제 낙오될지 모르는 개인의 불안을 내포한다.


『틱-톡』은 아픈 사람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다룸으로써 개인의 사적인 경험으로 한정되었던 아픔을 사회적이고 공적인 장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예술의 영역에서 타진해 보려고 시도한다. 이는 비단 아픈 사람의 존재방식을 이해하고 존립시키려는 시도에만 그치지는 않는다. 비장애인이 중심이 된 사회의 속도가 '정상'인지, 여기서 탈락하여 자신만의 삶의 양식을 구축해가는 아픈 사람의 삶의 속도가 '비정상'인지 우리는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무거운 업무강도와 지나친 경쟁이 불러일으키는 부작용을 떠올린다면 지금의 사회를 정상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비장애인과 장애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경계를 다시 사유하고 자기 자신의 내부에 있는 타자성과 타협하는 경험을 살펴봄으로써 이분법적으로 모든 것을 구분하고 배제해왔던 태도를 재고해야 한다. 글/유은순 사진/홍철기



- 참고문헌
수잔 손택, 『은유로서의 질병』, 이재원 옮김, 이후, 2002.
수잔 웬델, 『거부당한 몸』, 강진영·김은정·황지성 옮김, 그린비, 2013.
————, 「건강하지 않은 장애인: 만성질환을 장애로 대우하기」, 전혜은 옮김, 『여/성이론』 제 27호, 2012. 12, pp. 158-185.
아서 프랭크, 『몸의 증언』, 최은경 옮김, 갈무리, 2013.
전혜은, 「수잔 웬델 – 손상의 현상학자」, 『여/성이론』 제 27호, 2012. 12, pp. 186-204.
———, 「'아픈 사람' 정체성」, 전혜은·루인·도균, 『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 비사이드 콜렉티브, 2018, pp. 115-161.
조한진희,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동녘,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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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룩 아카이브 
https://www.neolook.com/archives/2019081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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